
[다이스가] 최악의 하루
W. ThePiedPiper
스가와라는 실컷 후회하고 있었다. 근 몇 년 중에 가장 후회하는 일일 거라고 생각도 하고 있었다. 제 옆에 멀쩡하게 잘생긴 상대를 보며 그 생각을 더더욱 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스스로도 이 상황에 너무나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그러자 상대는 그런 스가와라를 한번, 이상하다는 눈으로 힐끔 쳐다보았다.
어젯밤은 정말로 ‘미쳤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애초에 생일파티가 끝나고 곱게 집에 들어가서 발이나 닦고 잤어야 했다. 오랜만에 흥도 오르고 흥분도 했다고 게이바를 가서는. 생일이었으니까…,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하지만, 그런 자기합리화만으로는 이 망할 기분을 떨쳐내기는 쉽지 않았다. 아, 그때 마스터의 표정이 애매모호했던 것을 보고 정신을 차렸었어야 했다. 술도 내가 샀는데, 그런 싸구려 술은 어떻게 마셨을까나.
아니, 그 이전에 이렇게 넓은 학교에서 그것도 끝날무렵에 학교 식당에서 만난 것은 무슨 빌어먹을 우연일까. 오늘은 생일인 만큼 제가 좋아하는 마파두부를 주문하고 받아서 자리에 앉자마자 제 앞에 굳이 앉는 사람을 확인하려 고개를 들었고 눈이 마주치자 멋있게 웃는 바람에 얼굴이 붉어져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
“저기,”
“네?”
“아니야.”
이름은 뭐더라. 스가와라는 눈을 굴려 꽤나 오랫동안 생각해봤지만, 떠오르지 않아서 말았다. 그리고 그에게 어제 한 말을 생각하려 머리를 굴렸다. 생각은 잘 나지 않는데, 아마도 별 중요하지 않았던 이야기인 것 같았다. 그럼 그가 한 말을 생각해보려는데, 꽤 중요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 그것마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스가와라는 본인이 게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나서 결심한 것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첫 번째는 일단, ‘노멀은 건들이지 말자’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공과 사를 분리하자’는 것이었다. 뭐 그 이후에도 조금 더 있었지만. 일단, 그 두 가지는 지금 산산조각 나서 깨진 것을 인정해야했다. 지금 그가 교내식당 그 많은 자리 중에서 스가와라의 앞에 앉아 메밀소바를 먹는 이유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집에는 잘 들어가셨나보네요.”
“어, 덕분에. 고맙다.”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너도 잘 들어가서 다행이야. 그…,”
“사와무라 다이치요.”
“그래, 사와무라.”
꽤 오래 생각했는데도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었는데 친절하게 제 입으로 말해주더라. 스가와라는 급하게 가방을 챙겼다. 다른 손으로는 쟁반을 들었고. 우선 그 자리를 서둘러 빠져나오고 싶었다. 바쁜척, 수업이 있는 척 하며 그 자리를 피했다. 숨이 당장이라도 막혀버릴 것 같았다.
스가와라도 스가와라지만 사와무라도 만만치 않게 소문을 끌고 다녔다. 학교 일에는 영 관심이 없는 스가와라도 알 정도면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어디 대기업 장남이라고도 하고 그래서 회사를 물려받으려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다고도 하고. 그게 누구인가 관심도 없었는데 실제로 보니까 그럴 법도 한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니. 양 볼을 찰싹찰싹 때리며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한다.
뭐, 첫눈에 반한 게 죄지. 그렇지만 않았어도 마스터에게 먼저 물어보고 물어왔을 텐데. 딱 봐도 그곳에 있는 것이 너무나도 어색한 녀석이었다. 그걸 눈치도 못 챘다니. 스가와라는 제 뺨을 마구 쳤다.
[“스가, 어제 집은 잘 들어갔어?”]
“아니.”
[“무슨 일 있었어?”]
“말하자면 길어. 그나저나 왜.”
[“아, 오늘 수업 안 들어와?”]
그제야 시간을 자각하는 스가와라다. 급하게 발을 놀린다. 바보수염. 중요한 것부터 이야기 해야지.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어디다 정신을 놓고 있는지.
* * *
“그래서 스가 군은,”
“안 들어가요. 교수님 연구실에는.”
“왜?”
“교수님이랑 같이 있기 싫어서요.”
스가와라는 제게 은근히 몸을 기대오는 교수의 얼굴을 밀었다. 교수는 기분나빠하지도, 그렇다고 물러나지도 않았다. 이래서 학교 사람이랑 엮기기 싫었던 건데. 하필 제가 가는 바에 왜 이 교수가 있었는지도 의문이지만 꼬신다고 넘어가서는 하룻밤을 보낸 게 잘못이었다.
“그나저나 스가 군 오늘 생일이라고 하지 않았어?”
“네. 하지만 교수님이랑 식사는 안할 거예요.”
눈치 빠른 건 어디 가서 뒤지지 않은 일찌감치 거절을 한다. 생일 전날 잘 놀았으니 생일 당일에는 그냥 집에 가서 쉬고 싶었다. 기왕이면 가족들이랑 보낼 생각이었고. 스가와라는 가방을 뒤져 교수에게 일찌감치 마무리한 과제를 제출하고 연구실에서 나왔다. 숨을 한숨 돌린다.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복잡. 아무리 생각해도,
“최악이다.”
최악의 생일이 될 것 같았다.
자부한 것이 몇 가지 있었는데, 하나는 적어도 공과 사가 깨끗하다는 것이었고 단순한 유흥에 마음을 뺏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쉽게 이야기하면 섹스프렌드와의 뒤가 깨끗하다는 말이었다. 한 두 번의 섹스를 더 할 수는 있지만 쉽게 감정을 내줄 만큼 스가와라는 쉽지 않았다. 그것만큼 골치 아픈 것도 없었고 생각보다 마음을 여는 것이 어려웠다. 스스로도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언젠가의 미래는 아마도 혼자일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동성애자라고 자각한 순간부터 그건 예상도 하고 각오도 하고 있었다. 누구에게 기댈만큼 약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이야기했을 때 누구였지, 아즈마네였나? 여하튼, 스가와라에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그럼 언젠가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되겠다 싶은 사람이 나타나면?」
제 기억에는 아마 그럴 일 없다고 이야기 했었던 것 같다.
애초에 첫눈에 반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비현실적이었고, 스가와라는 생각 이상으로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스가와라는 사실 좀 무서웠다. 첫눈에 반한다는 사실도 믿지 않았는데 이렇게 제가 직접 당할 줄은, 그것도 그 사람과 하룻밤도 보냈는데 하필 그게 노멀에다 장래가 출중한 도련님일 줄은. 접어야한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하고 있었지만 기왕이면 연애라도 하게 같은 게이였으면, 하는 바람은 있었다.
내가 미쳤지, 진짜. 정신없이 교수를 피해서 밖으로 나오고 스가와라는 생각했다. 카운트로 센다면 딱 한번만 더, 오늘 안에 세 번 마주치면 수업이고 뭐고 집으로 도망갈 거라고. 딱 바로 앞에서 마주한 그, 사와무라는 다른 누구를 찾고 있다는 느낌 없이 누가 봐도 스가와라를 찾고 있는 느낌이 가득했다.
“스가와라 상.”
“미안, 바쁜 일이 있어서.”
“잠깐만 시간 좀 내주세요.”
“다음에 얘기하자.”
“다음에는 얘기 안 해주실 거잖아요.”
이래서 학교에서 엮기는 건 싫었다. 게다가 연하는 그 패기를 이기기도 쉽지 않았다. 사와무라의 마지막 말에 뜨끔, 찔려버린 스가와라는 궁시렁거리며 뒷말을 삼켰다. 그래, 이야기나 들어보자. 스가와라는 삐딱하게 섰다. 듣기는 하겠지만 흥미가 크게 있지는 않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사와무라가 말을 하려는 그 순간에 잠깐 막히지만 않았어도 좋았을뻔했다.
“사와무라, 오늘 저녁에 술자리 온다고 했지?”
“아,”
“우리 지금 잠깐 어디 갔다 합류할 건데 같이 가자.”
머뭇거리는 그를 한번 보고 그를 부른 무리를 한번 쳐다보았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하지만 어딘가 모를 귀티가 나는 그 모습에 스가와라는 더 힘을 빼고 삐딱하게 섰다. 이야기를 오래 들을 생각은 없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자리를 피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슬쩍 자리를 피해도 잡지도 못하고 넘어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친구들도 있으니까, 다음에 얘기하자.”
“…미안, 나 중요한 일이 있어서 못갈 것 같아.”
자리를 피하려는 스가와라의 손목을 다이치가 잡았다. 움직일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손목을 잡힌 순간, 차가운 땀이 가득했던 그 손을 뿌리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 * *
‘스가와라 생일 축하해!’
이르지만. 케이크와 종이폭죽, 소소한 선물, 그게 어제 밤의 시작이었다. 생일을 유별나게 챙기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는 스가와라였기 때문에 그렇게 소소하게 준비를 해준 친구들에게 내심 고마웠다. 못하지는 않지만 즐겨하지는 않는 술도 오랜만에 했고 케이크로 얼굴이 엉망진창이 되었지만 썩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마무리도 깨끗했다. 다만, 생일파티를 하던 곳이 스가와라의 전 남자친구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이어서 과거에 취해 바로 집으로 기어들어가지 못했던 것이 하나의 실수였었다.
사와무라를 만난 것은 자주 가는 바에서였다. 마스터와 소소하게 이야기를 하다가 문 앞에서 어쩡쩡하게 서있던 사와무라를 보고 처음에는 가만히, 하지만 주변에 사람이 꼬이는 것을 보고 제 옆으로 끌었던 것이 그 다음 실수. 여러 이야기를 하다가 기분에 술을 샀었다.
‘자리 옮길까?’
그 순간 사와무라의 표정이 왜 생각이 나질 않을까.
잠자리는 생각보다 좋았다. 하지만 누가 봐도 노멀이라는 게 티가 났다. 그게 세 번째 실수. 아쉬움에 사와무라의 얼굴을 더 많이 쓰다듬고 입을 맞췄던 것 같다. 여기서 나가면 다시는 안볼 생각을 했다. 사람은 유혹에 약하고, 더군다나 자신은 감정에 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자신이었다. 오늘은 내 생일이니까 내가 나한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자. 그렇게 넘겨버렸던 것 같다.
‘오늘 내 생일이다?’
‘아,’
‘그냥 그렇다고. 신경쓰지 마.’
어쩔줄 몰라하는 그 모습도 귀여워 미칠 지경. 술김에 나눈 필로우 토크 내내 사와무라는 꼼꼼하게 스가와라가 추울까봐 어깨 언저리까지 이불을 덮어주었고 밤새 내지른 교성에 쉰 목을 눈치 채고 물도 챙겨주었다. 마지막에는 사와무라가 무슨 말을 한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의 품에서 들었던 것 같았다. 그게 마지막 실수. 내가 먼저 잠들면 안 됐었는데. 그 전에 나왔어야 했는데.
“왜, 후회돼? 내가 어떻게 책임이라도 져줘?”
“네. 책임져주세요.”
“뭐?”
“저 사실 스가와라 상 알고 있었어요. 같은 학교 다니는 것도, 저보다 나이 많은 것도, 생일인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스가와라는 당황함에 입을 다물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굴러가지 않아 여러 생각을 하다가,
‘생일축하해요.’
그의 품에서 들었던 생일 축하한다는 말과,
‘오히려 생일 선물은 내가 받은 것 같지만요.’
옅은 웃음 섞인 말과,
“예전부터 좋아했습니다.”
지금의 말도 안 되는 고백이 머릿속에 들어차는 것을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스가와라는 아직도 놓지 않은 사와무라의 손이 차다는 것을 여전히 느끼고 있었다. 여름의 시작, 그 중턱에서 사와무라의 손만은 차가워서 온몸이 얼어버릴 것 같았다. 쿵, 쿵, 심장이 뛰고, 주변에 아무소리가 들리지 않고 숨이 가파지고.
“숨을 쉴 수가 없었어요, 처음봤을 때.”
나와 같은 감정을 가졌던 너와 지금의 내 감정을 공유해본다. 스가와라는 하는 말을 멍청하게 들었다. 스가와라와 같은 술집에 앉아있었다는 것, 그가 자리를 뜨고 어디론가 가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뒤를 밟았다는 것, 게이바인 것을 알아차렸지만 스가와라가 다른 남자와 이야기하는 것이 더 싫어 무작정 들어갔다는 것. 그리고 주절주절 이야기하던 그 말을 끊었다.
“지금 무슨 이야기하는지는 알겠는데, 미안하다.”
“왜요?”
“일단 너는 노멀이고, 앞길도 창창하잖아?”
“…….”
“나는 게이고 누군가 미래를 함께 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아, 못 해. 남자랑 사겨봤어? 아니잖아. 사람들한테 손가락질 당하고 심한 말을 당해도 아무 말도 못해. 잘못한 게 없으니까 고치지도 못하고. 많은걸 포기해야하는데,”
“그래서요?”
“지금 나는 너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거야.”
감당하지 못할 거라는 것을 너무 잘 안다. 사와무라의 표정을 볼 자신도 없어 그의 등 뒤에 빛나는 가로등만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하루는 최악의 하루인 것 같다.
“스가와라 상 손이 차네요.”
“어이, 사와무라.”
“생일이잖아요. 생일에는 마음대로 해도 되요.”
언뜻 본 시간은 12시를 3분 남긴 11시 57분. 사와무라는 앞에서 웃고 있었고, 아직 내 생일이었고, 엉망친창 이상하게 꼬여버린 오늘 하루,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나는 스가와라 상과 나의 지금을 이야기 하는 거예요.”
생각을 하는 동안,
최악의 하루는 끝이 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