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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스가] 유월의 고백

W. 슈아

코우시에게.

 

안녕, 오늘은 유월 십삼일이에요. 오늘이 무슨 날인가 하면, 당신도 알다시피 당신의 생일이에요. 우리가 처음 만난 날도 아니고 처음 사귀기 시작한 날도 아니에요. 국가적 기념일도 아니고, 몇 주년이나 몇 백일 같은 우리만의 기념일도 아니에요. 별처럼 반짝거리는 오다이바의 대관람차 안에서 별빛이 가득 내린 바다를 보며 첫 키스한 날도 아니에요. 당신이 나의 이름을 불렀기에, 나도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은밀한 곳을 파헤치던 날도 아니에요. 하지만 오늘은 나에게 굉장히 소중한 날이에요. 평범한 일 년 삼백육십오일 중에 가장 특별한 단 하루인 유월 십삼일이에요. 날씨는 맑고 우리는 여전히 사랑을 하고 있어요. 평범한 날과 다름없이.

 

그래도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 특별한 점을 찾아보도록 할까요. 오늘은 날씨가 유난히 맑아요. 당신이 태어난 계절이라 그런 걸까요. 요즘은 비도 내리지 않고 그런 것 치고는 건조하지도 덥지도 않아요. 당신을 닮아 완벽하게 상쾌한 날씨예요. 당신은 기분이 좋다며 가장 아끼는 흰 바탕에 목둘레를 따라 색색의 꽃이 새겨진 티를 입고 나갔죠. 당신은 좋아하는 옷을 입을 때 가장 아름다워 보이지만, 옷이 당신을 그렇게 한다기보다 당신이 옷을 그렇게 만드는 것 같아요. 당신이 그 옷을 입으면 파릇파릇한 꽃잎이 당신을 감싸며 피어나는 것처럼 보여요. 나는 세계의 모든 것에 생기를 불어 넣는 당신의 모습이 정말 좋아요.

 

오늘은 스즈모토 교수님이 휴강을 하셨어요. 과제를 과도하게 많이 내주셔서 당신이 싫어하던 그 교수님이요. 학생들에게 수업을 맡기고도 자기 할 일을 쌓아두다 결국 수업을 하지 못하게 되었나 봐요. 그 덕분에 당신이 강의를 들으러 나가기 전까지 꼭 껴안고 있을 수 있었어요. 당신은 방해된다며 밉지 않게 나를 밀어냈지만, 그것마저 애정임을 알아요. 그렇지 않다면 당신에게 파묻히려 들던 나는 갈 곳 없이 방황했을 테니까요. 당신의 품에서는 밝은 날 햇살 냄새와 부슬거리는 비 냄새가 동시에 나요. 어딘지 조금 그리운 어린 날의 냄새와 비슷하기도 해요. 당신의 자는 모습이 어린아이 같아서 그런 걸까요? 오늘 당신이 돌아오면 다시 꼭 안아줘야겠어요. 나를 위한 일이 아닌 생일 선물의 하나에요. 정말로요.

 

오늘은 왠지 모르게 당신이 말한 그 사진첩이 눈에 띄었어요. 카라스노 졸업식 날 당신에게 후배들이 선물했다던 그 사진첩이요. 사실 나는 당신 몰래 그 사진첩을 몇 번 봤답니다. 나에겐 생소한, 내가 없는 열여덟의 당신을 보기 위해서요. 나는 당신의 미지의 시절을 담아낸 당신의 후배들이 부러워요. 아무리 알고 싶어도 알 수 없는 부분까지 그들이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질투가 나요.

 

당신이 말하는 열여덟과 열아홉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당신이 말한 것처럼 그 차이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어요. 당신은 처음 본 순간부터 그립고 그리운 사람일 뿐일걸요. 내가 없는 당신도 지금처럼 예쁘더라고요. 한결같이 밝고 사랑스럽고, 한여름의 나무 그늘 같은 사람이더라고요. 저와 만나지 않은 열여덟 해 동안 당신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기에 당신은 그리 쉽게 변했다 말했을까요. 왜 그렇게 말하는 당신의 글씨가 어딘지 쓸쓸한 향이 났을까요. 당신이 좋아한다는 내 시원한 향이 당신의 꿉꿉한 안타까움을 채워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실 말이에요, 그 사진 말이에요. 공교롭게도 당신의 고교 시절 사진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 바로 그 사진이랍니다. 바비큐 파티의 고기 냄새와 왁자지껄한 소리가 물씬 나는 사진 속에서 당신은 해맑게 웃고 있고, 나는 당신을 애매하게 바라보고 있었어요. 미지의 시절에 유일하게 내가 함께한 사진이에요. 늘 함께였던 듯 당신과 자연스레 함께 찍힌 사진이에요. 우리의 첫 만남은 고작 합숙이었지만, 나는 당신과 눈을 마주친 후부터 당신을 줄곧 바라보고 있었거든요. 혹시 눈치채지 못했나요? 애매한 내 태도에 상처받고 두려워했나요? 그렇다면 위로와 사과를 담아 더욱 꽉 안아줘야겠네요.

 

다른 사람들은 당신의 후배에게 주목했지만, 나는 당신이 더 눈에 띄었어요. 당신의 가볍고 단단한 손끝에 팀원들이 의지하는 모습은 내가 되고 싶어 하는 모습이었어요. 물론 우리 팀도 나를 많이 믿고 존중하지만, 당신은 뭔가 달랐어요. 당신이 공을 올릴 때 코트 위는 물론, 바깥의 사람들까지도 안정감을 느낀다는 표정이었어요. 카라스노는 몇 번이고 졌지만, 당신은 후배를 기다리며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공을 올렸죠. 당신이 저보다 나이가 많아서, 일 년의 연륜이 더 있어서 그랬을까. 모두 성실한 팀에서도 눈에 띄게 성실한 당신은 이상해 보이기까지 했어요.

 

주장 회의 때 당신은 그렇게 말했죠. 자랑스러운 후배들을 잘 가르쳐줘서 고맙다고요. 덕분에 우리 아이들이 더 강해질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고요. 나는 그 말이 왜 그렇게 벅차고 아득했을까요. 당신의 자리가 더욱 밀려날 것이 분명할 텐데도 당신은 후배의 성장을 두려워하지 않았죠. 마치 그 정도쯤이야 금방 따라잡을 수 있다는 듯 오히려 더 반기고 기뻐했어요. 당신의 자신감이 나에게 밀려들어 와 무언가 맑게 울리는 소리가 났어요. 당신을 보면 살랑거리는 바람에 풍경이 댕그랑, 댕그랑거리는 것 같아 당신을 조용히 좇았어요.

 

유감이지만 나는 겁이 없는 편이에요. 담력 훈련을 하는 것에 별다른 감흥이 없었어요. 당신이 내 반응을 기대한 만큼 나도 당신의 반응을 기대했으나, 역시 당신은 무덤덤하더라고요. 당신과 같은 조가 되지 않았다면 참 재미없는 담력 훈련이 되었겠다 싶었어요. 나는 당신과 함께라서 겨우 그 순간이 무서워졌거든요. 당신과 손등이라도 닿게 되면 어떡하나. 어깨라도 부딪치면 어떡하나. 걱정대로 우리의 마른 어깨가 마주 닿아 둔탁하면서도 당신의 표현처럼 가볍게 울리는 듯한 소리가 났죠. 그건 아마 내 마음이 동요하는 소리였을 거예요.

 

¹⁾나의 공백은 방백이었어요. 내 무언은 당신에 대한 존경과 어느 순간 느끼게 된 애정을 외치는 혼잣말임을 당신은 몰랐겠죠. 나의 여백은 고백이었어요. 당신이 없는 동안 나는 드디어 그 맑은소리가 사랑임을 깨달았어요. 당신의 여백이 나에게 그늘을 드리우고 몇 번의 편지를 쓰고 지우게 했는지 아시나요? 오랜 시간이 지나 당신의 여백이 채워지고, 당신이 나의 눈을 태양이라고 불러준 순간 나는 그늘에서 나왔어요. 당신이라는 태양과 바람이 나를 꽉 채웠어요. 덕분에 그동안 눌러 담아온 고백이 터져 나와 이렇게 글을 쓰네요.

 

내 태양과 달과 별과 구름과 바람과, 그 모든 것이 되어준 스가와라 코우시, 생일 축하해요.

 

오늘도 사랑해요.

 

케이지로부터.

 

1) 아카스가 전력 60분 51번째 주제, 이제니의 시 <블랭크 하치> 차용. 원: 공백 여백 고백 방백 / 네가 나의 눈을 태양이라고 불러준 이후로 나는 그늘에서 나왔지.

* 2018 Sugawara Koshi's Birthday art collaboration home-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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