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이스가] 인어왕자이야기
W. 이네
‘왕자를 죽일 수 없었던 인어공주는 결국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고 말았어요.’
스가와라는 몇 번이고 읽어 거의 문장을 외울 지경인 ‘인어공주’ 책을 덮고는 자신의 꼬리를 쳐다보았다. 상반신은 보통의 인간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하반신은 물고기의 꼬리로 이루어져 있는 그는 인어다. 동화 속에서처럼 대가를 바라고 계약을 맺는 마녀도 없고 스가와라가 딱히 왕자라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가지만은 동화 속 인어공주와 같은 점이 있다. 바로 16번째 생일에 처음으로 바다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것.
여기에 스가와라가 태어나기 전부터 인어들 사이에 소문만 무성했던 전설을 끼얹는다면 조금은 이야기가 동화 같아질 수도 있겠다. 인어가 16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날, 누군가에게 자신의 비밀을 말한 뒤, 그와 1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만나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전설이다. 사실 이 전설이 현실이 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적어도 스가와라가 살아온 16년 동안에는. 그도 그럴 것이, 어떤 사람이 지금껏 보지도 듣지도 못한 인어의 존재를 믿음과 동시에 그의 사정을 이해해주고 1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만나러 오겠느냔 말이다. 스가와라는 누가 처음 퍼뜨리기 시작했는지 모를 소문에 마음속으로만 욕지거리를 쏟아붓고는 애써 무시했다. 동화 ‘인어공주’에서 인어공주가 인간으로 변하는 장면을 가장 좋아하는 제 스스로를 비웃으며 말이다.
시간이 흐르고, 스가와라는 어느새 16번째 생일을 맞이하게 됐다. ‘스가는 잔소리하지 않아도 알아서 조심히 다녀올 거다’라는 주변의 신임을 얻은 채, 그는 들뜬 마음을 진정시키며 바다 위로 빠르게 헤엄쳐 올라갔다.
어느덧 수면에 가까워진 스가와라는 긴장된 마음을 달래려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한 뒤, 눈을 꼭 감은 채 바다 위로 머리를 내밀었다. 그의 눈 앞에 펼쳐진 바다 위 세상은 그동안 상상만 해왔던 것들보다 훨씬 경이로웠다. 서서히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태양과 그 빛에 따라 책에서 보던 것과는 조금 다른 색을 띠는 모래와 나무, 그리고 저 멀리 작게 보이는 인간들이 살고 있을 크고 작은 건물들. 햇살이 비춤에 따라 조금씩 깨어나는 바다. 그 모든 풍경은 말로는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소름 돋게 아름다웠다.
스가와라가 바다 위 세상에 여전히 놀라워하고 있을 때, 조용한 해변으로 한 남자가 천천히 걸어왔다. 새하얀 옷감에 화려한 붉은색 자수가 놓여 있는 상의에 꽤나 고급스러워 보이는 원단의 검은 바지를 입은 그는 입은 옷과는 대비될 정도로 다부진 얼굴이었다. 인상이 험악해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웃지 않으면 선뜻 다가가기 어려운 느낌이었기에 그와 눈이 마주친 스가와라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본래 인어는 믿을 만한 상대가 아닌 이상 자신의 존재를 숨기는 것이 마땅하나 풍경 감상에 정신이 팔렸던 그의 실수였다.
“아름…답습니다.”
그 남자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였다. 스가와라는 예상치 못한 말에 눈만 끔뻑거릴 뿐이었고 남자 또한 제가 한 말에 당황한 듯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며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정적 속에 남자의 얼굴을 찬찬히 쳐다보던 스가와라의 눈에 비친 것은 조금 상기된 듯한 남자의 볼과 붉어진 그의 두 귀였다. 인어 사이에 떠도는 전설을 애써 머릿속에서 지우고 있던 스가와라의 마음속에 아주 작은 희망이 피어올랐다. 저 남자라면, 어쩌면 그 말도 안 되는 전설을 현실로 만들어줄지도 모르겠다는.
스가와라의 바람은 점차 이루어지는 듯했다. 인어의 전설을 들은 남자는 하루도 빠짐없이 스가와라를 같은 시간에 찾아왔다. 물론, 아무런 조건 없이 그 귀찮은 일을 해줄 정도로 남자는 한가하지 않았다. 인어의 아름다움에 한눈에 반한 그는 1년 뒤 인간이 되면 자신의 연인이 되어달라는 조건을 내세웠고 스가와라는 별다른 고민 없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그들의 첫만남이 어느새 반년도 더 전의 일이 되자 스가와라는 매일같이 짧은 시간 물 밖으로 몸을 내놓고 대화를 나누면서 그에 대해 꽤나 많은 것을 알게 됐다. 남자의 이름이 ‘사와무라 다이치’라는 것, 그가 이 나라의 왕자라는 것, 그리고 매일 같은 시간에 항상 같은 옷만 입고 궁 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사실들이었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상대방에 대한 것은 직접 듣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심리일까, 아니면 그저 스가와라의 잠깐의 감정이었을까. 다이치와 스가와라가 매일같이 만난 지도 어느덧 열 달을 채우기 조금 부족한 시간이 흐른 시점의 어느 날, 스가와라는 별다른 이유 없이 평소보다 조금 일찍 육지로 올라왔다. 보통의 날에는 주로 다이치가 먼저 도착해 스가와라가 올라오기를 기다렸지만 그 날은 어쩐지 다이치보다 일찍 약속장소에 올라가 그가 어느 쪽에서 걸어오는지 보고 싶었다. 스스로 왕자라고 소개를 했으니 저 멀리 보이는 성 쪽에서 올 거라는 예상을 하고 성으로 향하는 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지만, 그곳에서 온 사람은 다이치가 아닌 처음 보는 두 명의 사내들이었다. 스가와라는 재빨리 몸을 숨겼지만, 점점 가까워지는 사내들과의 거리에 본의 아니게 그 둘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왕께서도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실 거야. 이제 막 결혼한 아들부부한테서 벌써 이혼 얘기가 나오니 말이야.”
마치 제 일처럼 안타까워하는 긴 머리의 사내가 말을 꺼내자 그 옆에 있던 키 작은 사내가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왕족이 이혼이라도 하면 별별 소문이 다 나돌 테니…게다가 왕자님이 한 분 밖에 안 계시니 결국 왕이 되실 분인데 벌써 소문에 휩싸이면 좋을 거 하나 없을 텐데.”
우연히 들은 그 말들은 저도 모르는 새에 스가와라의 귓가에 맴돌다가 그의 머릿속에 강하게 박혔다. 사내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이 지금 만나고 있는 사와무라 다이치는 아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된 스가와라와 사귀는 조건으로 그를 매일 만나러 오는 것. 사실 법적으로 문제되는 것도, 전설에 바람 피는 사람과 만나면 안 된다는 조항도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찝찝한 기분은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곧이어, 다이치가 평소와 다르게 미리 올라와 있는 스가와라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으며 달려왔고 스가와라는 괜한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다이치에게 물었다. 질문을 하는 스가와라의 표정에는 일말의 두려움이나 불안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궁금함만이 가득했다.
“당신, 결혼한 몸이에요? 아까 우연히 사람들이 말하는 걸 들었어요. 왕자가 좋지 못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는.”
다이치는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그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하하, 결혼이라뇨. 아마 저희 형을 이야기하는 걸 겁니다. 형께서 얼마전에 결혼을 했는데 형수님 성격이 꽤나 다가가기 힘들더군요.”
스가와라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자신이 질문을 던졌을 때 흔들리는 다이치의 눈을 보자마자 스가와라는 눈치챘다. 이 사람은 왕자가 아니라고. 친절하게도 이 나라에 왕자가 단 한 명인 것을 말해준 두 사내 덕에 다이치를 추궁할 정보는 스가와라에게 충분했지만 그는 굳이 더 묻지 않았다. 다이치가 왕자든 아니든 그 사실이 스가와라에게 그다지 중요치 않아서이기도 했지만 때가 되면 말해주겠지라는 막연한 믿음 때문이기도 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스가와라의 17번째 생일이 되었다. 그의 생일 하루 전에서 당일로 넘어가는 그 순간은 스가와라의 인생에서 가장 신비롭고 뭉클한 순간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밤을 비추는 달빛이 환하게 빛나는 그때, 물고기의 꼬리와 비늘을 가지고 있던 스가와라의 하반신은 누가봐도 아무 탈 없는 인간의 다리로 바뀌었다. 조심스레 제 다리를 만져본 스가와라는 더 이상 비늘이 아닌 제 상반신과 같은 피부의 감촉에 어색해하며 눈을 떼지 못하였다.
어둠이 걷히고 평소와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찾은 다이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무도 없는 바닷가도, 조심스레 숨어있는 인어도 아니었다. 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한 채, 꽤나 멀끔하게 차려 입은 성인 남성이 눈이 휘어지게 웃으며 놀란 표정의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이치는 그날 아름답다는 말이 무얼 위해 존재하는지 비로소 확실하게 깨달은 듯했다.
이제 다이치와 스가와라는 연애를 하다가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커져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 같은 결말이 나야 할 이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데에는 다이치의 고백이 크게 작용했다. 그의 고백은 로맨틱하고 설레는 사랑 고백이 아닌 둘 사이의 냉랭한 분위기를 유도한 자신의 잘못에 대한 고백이었다. 이는 염치없지만 화내지 말아 달라는 다이치의 밑도 끝도 없는 부탁으로 서두를 열었다.
“사실 저는…왕자가 아닌 농사를 지으며 사는 일개 평범한 농부입니다. 제가 매일 입고 나온 이 깔끔한 옷은 제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비단옷입니다. 여태 말한 궁에서의 생활은 모두 저의 망상에 불과하니 저는 1년동안 매일같이 당신에게 거짓만을 말한 셈이네요.”
다이치의 말이 끝나자 스가와라는 별다른 표정의 변화없이 한겨울의 바닷바람과도 같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처음 거짓말을 한 이유는요?”
“아름다운 당신이 처음 육지에서 만난 사람은…농부보다는 왕자가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사람의 사이에는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다이치는 더 이상 그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고 스가와라 또한 딱히 먼저 입을 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들이 만난 이후로 가장 행복해야 할 순간은 얼음과도 같이 차갑고 딱딱한 분위기로 가득 찼다.
“원래 대가였던 저의 연인이 되어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제가 당신에게 무엇을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저에게 거짓말쟁이라고 욕을 하고 다시는 얼굴을 보지 않으신다 하더라도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스가와라는 다이치의 고백을 들은 이후로 고민만 하던 말을 내뱉었다.
“사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어요. 당신에게 결혼한 몸이냐고 물어본 이후부터요. 저는 거짓말한걸 모두 눈감아줄 정도로 착하지도, 그 모든 걸 무시하고 당신의 연인이 될 정도로 당신을 좋아하지도 않아요. 그러니 우리, 나를 인간이 되게 해준 당신의 수고는 깔끔하게 돈으로 정리하고 앞으로 만나지 않기로 해요.”
스가와라는 제 옆에 있던 크고 많은 짐들 가운데 꽤나 묵직해 보이는 돈다발을 손사래 치는 다이치에게 애써 건네주고는 한치의 미련도 없이 뒤돌아섰다. 그렇게 둘의 관계는 허무하게 정리되는 듯했다.
그 특유의 친화력과 친절로 스가와라는 육지 생활에 별 탈 없이 적응해나갔고 다이치도 문득 아름다웠던 인어를 떠올리며 자신의 삶을 살아갔다. 각자의 생활에 다시금 서로가 스며들기 시작한 것은 스가와라가 결국 이혼을 선택한 진짜 왕자와 육지에서의 첫 연애를 하면서부터다. 꼬리로 헤엄치는 것이 아닌 인간의 다리로 걸으면서 데이트를 한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인어였을 때와 다를 것 없는 연애에 하루하루가 행복한 그의 삶을 흔든 것은 바닷가에서의 데이트였다. 바닷가에 가까워질수록 본인도 모르는 강렬한 트라우마가 스가와라를 뒤흔든 것이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정확히 어떤 두려움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스가와라는 바닷물이 발에 닿기만 해도 온몸을 덜덜 떨었다.
그 날의 만남을 황급히 끝낸 스가와라는 인어만의 특이한 휘파람 소리로 다른 인어들을 바다 위로 불러냈다. 바닷물에 가까워질수록 두려움이 커졌기에 최대한 떨어진 곳에서 대화할 수밖에 없어 그리 많은 정보를 얻지는 못했지만 조각조각 남아있는 기억을 종합해보자면 대충 이런 말이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유는 하나야. 네가 의도치는 않았지만 그 남자의 거짓된 모습과 1년간 만나서 이렇게 된거지. 너 지금 바다 근처에만 안 가면 되겠지라고 안심할 수 없을 걸? 그런식으로 예상치 못한 무언가 나타났다는 거는 앞으로 일상생활이 불편해질 정도로 다른 결함들도 발견될거야. 쉽게 말해, 너는 아직 완전하지 않은 인간인 셈이야. 선택지는 딱 두개 밖에 없어. 다시 인어가 되든, 이번에는 그 남자의 진정한 모습과 다시 1년동안 매일같이 만나든지.”
스가와라는 말도 안 되고 흠 많은 전설에 밤새 욕을 쏟아붓고는 왕자의 애인이라는 신분을 이용해 손쉽게 다이치와의 다시는 없을 줄로만 알았던 만남을 가졌다. 모든 상황 설명을 들은 다이치는 모든 것이 자신의 거짓말 때문이라며 자신의 힘이 닿는 곳까지 협조하겠다며 스가와라의 예상보다도 더 격한 반응을 보였다.
왕자와의 만남보다는 아무 탈 없이 인간이 되는 것이 더 중요했던 스가와라는 이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할 리 없는 왕자와의 만남을 정리하고 다이치와의 동거를 시작했다. 둘의 동거생활은 평범했다. 다이치는 정말 그럴 필요 없다고 극구 만류했지만 그가 일을 나갈 때면 스가와라는 식재료를 사오거나 청소를 하거나 하는 보통의 집안일을 했다. 가끔씩 다이치가 쉬는 날이면 둘이 같이 시내로 나가 거리에서 하는 공연을 한참이고 보기도 했다.
“왜 당신의 원래 모습을 숨겼어요? 지금도 꽤나 괜찮은데.”
일을 마치고 늦은 저녁을 먹는 다이치를 보며 스가와라가 툭 던지듯 한 말이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농부보다는 왕자가 당신에게 더 어울리니까요.”
다이치 역시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않고 답하자 스가와라는 조금 뜸을 들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진짜 왕자도 만나본 나로서는 권력 싸움에 휘말릴까 걱정돼 궁에도 한 번 못 데려가는 왕자보다 감자라도 배불리 먹을 수 있게 해주는 농부가 더 좋아요.”
“혹시 지금 그 말…”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은 다이치가 동그래진 눈으로 말하자 스가와라는 단칼에 끊어내고는 답했다.
“그렇다고 당신이 좋다고 한 말 아니니까 착각하지 말아요.”
이렇듯 큰 사건없이 평화로운 생활이 지속되던 어느 날, 스가와라는 평소보다 조용한 아침 가운데 눈을 떴다. 이른 아침을 먹기 위해 달그락거리는 소리도, 외출 준비를 하는 분주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집안에 자신을 제외한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한 스가와라가 혹시 제가 너무 늦게 일어났나 싶어 시간을 확인했지만 분명 평소와 같은 시간에 일어난 것이었다. 즉, 다이치는 집 안에 있어야 했다. 왠지 모를 불안감에 항상 다이치가 일하는 밭에도 급하게 나가보았지만 그곳에도 다이치는 없었다.
해가 저물고 저녁 먹을 시간이 지나고, 평소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한참 지나고도 다이치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스가와라는 아무 소식 없는 그에게 화가 났다. 화가 가라앉자 이대로 지금까지 해온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되진 않을까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불안감조차 사라지자 혹시나 다이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하루가 지나기 겨우 한 시간을 남겨두고 헐레벌떡 집으로 돌아온 다이치의 모습을 보며 스가와라는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말았다. 우는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지 그는 저도 모르게 다이치를 안은 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다이치는 예상대로 당황하며 상황 설명과 함께 몇 번이고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다.
“지금까지 한 수고가 사라질까 봐 걱정한게 아니라 당신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까 봐 걱정한 거라고요!”
스가와라의 외침에 집은 한순간에 적막이 감돌았고 이를 깬 것은 다이치의 어색한 웃음이 섞인 되물음이었다.
“어…그러니까…제가 이대로 없어지면 당신이 바닷가에 갈 때마다 힘들 테니까…말이죠?”
다이치의 말에 스가와라는 눈물이 그쳤는지 그에게서 조금 떨어져 한참을 째려보다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유가 없어도 좋아하는 사람이 걱정되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
말을 하고서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온 것은 다이치가 아닌 우습게도 스가와라였다. 지금껏 바쁜 다이치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주고 싶다 생각한 것, 오늘은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의 말에 같이 나갈 생각에 신이 났던 것, 그가 입가에 묻은 것을 닦아줄 때나 옷매무새를 정리해줄 때 저도 모르게 이상한 감정이 들었던 것,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이 다시 인어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를 도와야겠다고 생각한 것. 이 모든 것은 모두 하나의 결론만을 가리키고 있었다.
“당신, 아직 저 좋아하는 거죠?”
혼란스러워하는 다이치에게 스가와라가 던진 질문이었다. 다이치는 귀가 빨개진 상태로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고 그런 그를 보며 덩달아 얼굴을 붉힌 채로 스가와라가 이어서 말했다.
“그러면 나 앞으로 남은 1년 다 채워도…계속 당신이랑 같이 살아도 돼요? 연인관계로.”
그들에게 더 이상 날짜를 세는 것은 무의미한 듯했다. 날이 갈수록 점차 스가와라가 인어였다는 사실이라든지 다이치가 처음에 거짓말을 했었다든지 하는 사실들은 중요치 않았다. 두 사람이 같이 산 이후 정확히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그들은 스가와라가 정말 괜찮아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바닷가로 향했다. 혹시라도 아직 물에 대한 공포심이 남아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무색하게도 스가와라는 아이처럼 해맑게 물가에 발을 첨벙이며 즐거워했다. 스가와라는 정말 괜찮았다.
정말 괜찮은 날씨였고 괜찮은 풍경이었다. 참 괜찮은 하루였다. 그 괜찮은 하루에 괜찮은 햇살을 받은 스가와라의 은빛 머리칼은 유난히도 괜찮게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