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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스가] 프레젠또

W. 윤

암막커튼이 빈틈없이 쳐져 있는 방은, 지금이 밤인지 낮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커튼아래로 더블 사이즈의 침대가 놓여져 있다. 그 침대위로 흰색의 이불을 턱 아래까지 올려 덮은 은색머리의 남자가 새근새근 자고 있다.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공간을 조용히 가득 채우고 있을 때, 빨간색의 알람 시계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스가와라 코우시는 손을 뻗어 소리의 근원지를 찾았지만 손에 잡히지 않았다. 베개에 묻은 얼굴을 들어 눈으로 알람 시계를 찾았다.

“아, 토오루”

시계는 침대와 두 걸음쯤 떨어진 곳에 놓여져 있었다. 분명 오이카와 토오루의 짓이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오후에는 일어나야 한다며 신신당부를 했었다.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고있는 스가와라 코우시는 요즘 자정을 넘겨 집에 들어오는 일이 잦았다. 일인 출판사로 지역사회 홍보 책자 작업을 위주로 하고 있는 그는 오늘 아침까지 담당자들에게 보내야하는, 1차 원고 편집을 새벽 에야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아침을 알리는 새소리와 함께 집에 들어가 겨우 마지막 기운을 짜내어 침대에 몸을 뉘었다.

“코우시… 왔어?”

“응, 토오루, 깨지말고 좀 더 자자”

잠에 취해 한껏 젖은 목소리의 오이카와가 말을 걸었고, 내일은 무조건 정오에는 일어나야 한다는 잠꼬대 같은 말을 끝으로 같이 잠들었다. 알람 소리에 정신은 들었지만, 눈은 아직 뜨지 않은 그는 베개로 귀를 막았지만, 스가와라는 알고 있었다. 저 시계는 자기가 깰 때까지 끈기 있게 울릴 것이다. 목표를 위해서라면 끈기 있는 오이카와 처럼. 무거운 몸을 일으켜 침대위에 걸터앉았다. 회색의 머리엔 까치집이 여러 채 지어져 있었다.

바닥에 놓여진 알람 시계를 끄고는 다시 일어나 침대로 향하다가 다시 몸을 돌려 쪼그려 앉았다. 붉은색 알람 시계 밑에 은행봉투가 붙어 있었다. 스가와라는 양면테이프로 붙여진 알람 시계 다리를 떼고 봉투를 열어봤다. ‘툭’ 순간 안에서 작은 네모난 물체가 떨어졌다.

“……뭐야, 콘돔?”

언뜻 보면 비타민의 모양이었지만 분명 그 앞엔 딸기향이라 적혀 있는 콘돔이 분명했다.

“뭐야, 토오루..”

어이가 없는 듯 웃으며 오른손엔 봉투를 왼손엔 콘돔 하나를 쥐고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봉투안을 열어 그 안에 편지를 꺼냈다. 편지를 펼치자 천엔이 들어있었다.

[내 하나뿐인 우주 코우시 스물 여덟번째 생일을 축하해♥ 코우시! 욕하면서 일어났지? 정오에는 일어나야 보물찾기를 오늘안에 끝낼 수 있을 거야 우리집엔 총 오만엔이 숨겨져 있어 기간은 내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 갈때까지! 파이팅이야!]

“깜찍한 것”

스가와라는 천엔을 곱게 접어 잠옷 주머니에 넣었다. 스가와라가 제일 좋아하는 선물은 상품권이나, 현찰이었다. 오이카와는 그게 싫었다. 선물은 선물을 하려고 준비하는 그 마음부터 선물의 시작이라 생각하는 오이카와였다. 좋아할까, 어울릴까, 필요할까 하는 고민 또한 선물을 완성시키는 마음이라 여겼다. 스가와라는 달랐다. 원하는 걸 말하는 것에 능숙하지 않았다. 원체 남에게 의지하는 성격이 아닌 스가와라는 선물 받은 상품권에 제 돈을 더해서 원하는 물건을 구입하는게 좋았다. 그게 마음이 편했고 만족스러웠다. 오이카와와 함께한 육 년의 시간동안 다섯번의 생일을 지났고, 선물은 다양했다. 꽃, 편지, 반지, 시계 등. 다 너무 좋았지만, 그래도 선물의 꽃은 현금 이라던 스가와라였다.

스가와라는 잠을 깨려고 마른 세수를 했다.

“아, 진짜 토오루 사람 잠 못자게”

입에서 나온 말과는 다르게 입꼬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스가와라는 생글웃으며, 그대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욕실 선반에 놓여져 있는 헤어 캡을 들어 머리를 고정하고는 세수를 하려고 했다. 헤어 캡을 들자 이곳저곳 서툰 솜씨로 접은 게 확실한 색종이로 접은 하트모양의 쪽지가 놓여 있었다.

[깨끗하게 맑게 자신있게! 알지? 씻고 정신차리고 밥먹자. 내 사랑 코우시 생일 축하해♥]

쪽지와 함께 오백엔 두 개와 이번엔 초박형이라 적혀져 있는 콘돔도 함께 놓여져 있었다. 스가와라는 웃으면서 동전은 천엔이 들어있는 오른쪽 주머니에, 콘돔은 왼쪽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샤워를 하고 나온 스가와라의 얼굴은 연붉은 장미색으로 물들었다. 스가와라는 화장대에 앉았다. 첫번째 서랍을 열어 드라이기를 꺼냈고, 그 안에 민트 색 동그라미가 그려진 편지지 한통이 있었다. 드라이기를 내려놓고는 편지지를 열었다.

[이쁘네 코우시, 이 편지를 봤다는 건 머리를 말리려고 한거겠지? 머리 말려야 감기 안 걸려 뽀송 하게 말리자, 난 내 세상인 코우시가 감기도 안 걸렸으면 좋겠어 생일 축하해♥]

그 안에는 쪽지와 함께 만엔이 들어있었고, 초록색의 콘돔이 들어있었다

“……메론..향..?”

스가와라는 돈과 콘돔을 화장대 위에 올려놓고는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면서 생각했다. 참 나도 많이 바뀌었구나.

스가와라는 머리를 말리지 않았다. 머리를 말리는 시간대신 잠자는 시간을 선택했다. 얇은 머리칼은 부는 바람에 말려졌고, 불편함이 없었다. 오이카와와 동거를 시작하기 전까진.

사귄 지 삼 년째, 오이카와가 먼저 동거제의를 꺼냈다.

“코우시, 우리 같이 살까?”

“결혼을 말하는 거야?”

“해 줄거야?”

스가와라는 결혼은 원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묶여 있는 기분이 싫다는것이 그 이유였다. 누군가가 이유가 되어서 변하는 것도, 싫었다. 오로지 자신으로만 변하고 싶었고, 오로지 자신으로 서 있고 싶었다.

“아니”

단호한 스가와라의 말에 오이카와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결혼 말고 같이 살자 월세 아끼자”

그렇게 로맨틱과는 거리가 조금 멀게 시작된 동거였다.

삼 년을 만났지만 둘은 모르는 모습들이 많았다. 화장실에 휴지를 놓는 방향부터, 좋아하는 티비 채널, 싱크대에 설거지거리를 정리해 놓는 버릇까지 모두가 달랐다. 그리고 머리말리는 것도.

“코우시 머리 안 말려?”

그날은 겨울이었고, 아침 출근시간 이었다. 일찍 일어나 드라이기로 머리 세팅까지 끝낸 오이카와는 축축하게 젖은 머리 채로 옷을 입을 스가와라에게 말을 걸었다.

“응 우리 지하철 타잖아. 지하철 타면 말라”

“… … 그게 말이야?”

한동안 오이카와는 아침에 잠이 덜 깬 스가와라를 머리 감기고 앉혀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려줬다. 꾸벅꾸벅 졸면서도 제 머리칼 사이로 들어오는 오이카와의 손길이 좋았다.

“참 변했네”

새삼 스가와라는 느꼈다. 누군가로 인해 변해가는 걸 싫어했지만, 물들어가는게, 변해가는게 그리, 썩 나쁜 일만은 아니구나. 라고 생각을 했다.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곤, 고픈 배를 채우러 주방으로 걸어갔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코우시 일어났네!”

“알람을 그렇게 해놓고 갔는데 어떻게 안 일어나”

“그럼 지금 보물찾기 하고있겠네?”

“어쩜 이리 이쁜 생각을 했어?”

“코우시 남친이니까”

“정답이야. 나 지금 밥먹으려고 지금 씻고 머리 말렸어”

“찬장에서 마파두부 꺼내 먹을 꺼지?”

“응 아마?”

“꼭 그거 먹어 야해 코우시 알았지?”

“거기에 뭐 있구나,”

“어? 음 아니?! 코우시 그거 좋아하니까”

“알았어요 티없이 맑은 내 토오루야 자기는 밥 먹었어?”

“그럼 먹었지”

“뭐 먹었어?”

시시콜콜한 대화가 이어졌다. 같이 산 삼 년여 시간동안 둘은 명절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했다. 그럼에도 궁금했다. 오늘의 점심은 무엇인지, 아침에 출근은 잘 했는지, 지금 내가 없는 시간에 서로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통화를 마친 스가와라는 주방으로 가 찬장을 열었다. 가지런히 놓인 마파두부 박스 앞으로 쪽지한장이 놓여져 있었다. 그는 종이를 집어 들었다. 핑크색 하트 모양이 중앙에 큼지막하게 그려진 편지 봉투였다.

“진짜 맑다 맑아 투명해, 토오루…”

광대를 한껏 올린 스가와라는 쪽지를 먼저 펼쳤다.

[코우시 밥먹을 때 너무 맵게 먹지마, 조금만 맵게 캡사이신 쪼로로로록이 아니라 쪼로록만 이제 건강을 생각해야할 나이야 우리! 절대 내가 너무 매워서는 아니고!! 아무튼 생일 축하해 코우시♥]

쪽지를 읽다가 터지는 웃음에 스가와라는 손등으로 입을 막았다.

“하긴, 매운거 많이 늘었지 우리 토오루”

티비에 나오는 연기자가 그런 말을 했다. 입맛의 차이가 성격차이를 만들고 그래서 사람들이 성격차이를 이유로 헤어지는 거라고, 둘의 너무 다른 버릇은 입맛도 포함이었다. 매운 걸 좋아하는 스가와라와, 매운걸 거의 못 먹는 오이카와였다. 하지만 맞추는 건 오이카와였다. 제 음식만 매우면 된다던 스가와라였지만, 오이카와는 뭐든 같이 하고 싶었다. 같은 걸 먹고 싶었고, 같은 걸 보고 싶었다, 그래서 본인이 스가와라에게 맞추기로 선택했다.

“코우시..나 너무 매워…”

“야 바보야!? 자기꺼는 안 맵게 해야지!”

“그래도 코우시가 먹는거 같이 먹고 싶었어”

스가와라는 알고있었다. 매운맛을 즐기지 못하는 그가 자기와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그 맛을 견디는 모습이 썩 좋았다. 그래서 욕심을 냈다. 말로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매운 걸 먹는 그의 붉은 입술을 보며 마음이 꽉 채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궁금했다. 안 매운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

편지를 읽고는 봉투를 열었다. 그 안엔 오천엔이 들어있었고, 흰색에 콘돔이 또, 들어있었다.

“….돌기…형? 몇 개를 산거야?”

스가와라는 주머니에서 콘돔을 꺼냈다.

“세개..아 침대위에 하나 네개..?”

주머니에서 꺼낸 세개의 콘돔을 들고는 침대로 향했다. 침대에는 아침에 알람 시계에서 떼어낸 콘돔이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다.

무언의 메시지인가… 생각했다. 스가와라의 출판사일이 바빴다. 일을 시작하고는 오이카와와 함께 저녁을 먹는 일이 줄어들었다. 지역 지주들을 만나야 했고, 그들에게 지역에 이야기를 들어야 했으며, 그로 인해 진행되는 일들이 스가와라를 저녁 늦게, 심야에 집에 들어가도록 만들었다. 잠자리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한달..인가”

그는 머리속으로 일을 시작한 날을 세어보았다. 일이 들어오고 한달이었다. 잠자리를 못 가진게.

그는 휴대폰을 들어 음악을 틀었다. 그가 좋아하는 비발디의 사계가 집안 가득 울려 퍼졌다. 그는 혼자인 시간을 좋아했다. 그게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악장을 즐겨 듣는 이유였다. 바이올린 하나로 겨울에 쓸쓸함을 표현한 곡은 잔잔하기도 하고 어딘가 을씨년스럽기도 했다. 남자를 좋아하는 그는 평생을 혼자 살 것이라는 생각으로 살았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기대지도, 기대어서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오이카와와 함께 육 년을 만나고, 삼 년을 같이 살고있다. 손에는 오이카와의 편지들이 들려 있었다. 스가와라는 코끝이 찡해져 왔다. 그는 코를 훌쩍거렸다. 그에게 오이카와는 항상 벅찬 사람이었다. 음식 하나를 해도 내 생각을 먼저 해주는 사람 이었다. 누구보다 스가와라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오늘도, 지금 이 순간도 그랬다. 어느 티비광고 슬로건이 있었다.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그 사람이 좋아하는 걸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싫어하는 것을 안 하는 것이라고, 오이카와가 그랬다. 스가와라가 싫어하는 것을 안하려 노력했고, 좋아하는 것을 더 잘 하려 노력했다. 스가와라는 올라오는 벅차 오름을 참다가 목구멍 아래가 따가워 왔다. 하지만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스가와라는 탁자 위 티슈를 뽑았다. 티슈안에서 천엔짜리가 다섯장이 연달아 나왔다.

“아 뭐야”

웃음이 터졌다. 마술 같았다. 마술사가 모자에서, 아니면 포켓에서 손수건을 꺼내면 색색의 다른 손수건들이 딸려 올라오듯. 천엔짜리가 다섯 장 그렇게 딸려 올라왔고, 그 끝엔 또, 콘돔이 매달려 있었다.

“아, 진짜 토오루 어제 혼자 바빴겠네”

스가와라는 티슈 사이에서 편지를 찾았다. 여태껏 찾은 것들은 편지가 항상 함께 였는데, 이번엔 없었다. 티슈 한통을 다 뽑았지만 편지는 들어있지 않았다.

“뭐야 편지는?”

스가와라는 왠지 모를 섭섭함에 티슈 곽을 집어 던졌다. 그리고 그 바닥에 작게 노란색의 포스트잇이 붙어져 있었다.

[자기가 이걸 봤다는 건, 티슈 곽을 살펴본걸까, 아님 던진걸까, 상관은 없어 자기가 이걸 봤다는 게 중요해. 사랑해 내 코우시, 니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생일축하해♥]

스가와라는 노란색의 포스트잇을 조심히 떼어냈다.

“이젠 진짜 나를 너무 잘 아네”

스가와라의 목소리가 연주되는 바이올린 선율에서 춤을 췄다. 플레이 리스트에는 비발디의 사계 뿐이었고, 전곡 반복 중 이었다. 어느새 교향곡은 겨울 3악장까지 끝나고 봄 1악장이 한창 연주되고 있었다.

스가와라는 돈을 다시 정리해 오른쪽 주머니에 넣었고, 콘돔은 왼쪽주머니에 넣었다. 제 각각의 모양과 종이의 편지들은 침대위에 하나씩 올려 두고는 커피를 내렸다.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투명한 유리잔 가득 붙고는 커피머신에서 캡슐커피를 숏으로 두 번 내렸다. 커피향이 집안 가득 퍼져갔다. 커피를 마시며 그는 집안을 천천히 바라봤다.

“앞으로, 이만 팔천엔…”

그의 주머니엔 이만이천엔이 있었다.

“흠, 토오루라면…?”

스가와라는 오이카와가 이 집에 어디에 보물을 숨겼을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토오루라면 어디 다가 숨겨두면서 혼자 신난다고 웃었을까, 생각했다. 그러다가 웃음이 다시한번 더 터졌다. 퇴근하고 쉬지도 않고, 자기 생일 이벤트를 해준다고 편지지를 사 들고, 콘돔을 사 들고, 그렇게 집안 구석구석을 뒤졌을 그가 사랑스러웠다. 생일에도 집에 늦게 들어오는 자기가 뭐 이쁘다고, 스가와라는 생각하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스가와라는 옷장을 열었다. 그 안에는 스가와라가 출판사를 열고 첫 계약금을 받고 오이카와에게 사준 양복이 걸려 있었다. 그는 그 옷을 소중하게 여겼다. 이게 뭐라고, 그의 옷장에는 그 양복보다 훨씬 더 좋은 질의 옷들이 즐비했다. 오이카와는 옷을 중요하게 여겼다. 보여지는 모습이 멀끔해야 사람들이 자기를 보는 눈이 달라진다 여겼다. 패션디자이너인 그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그가 제일 아끼는 옷은 스가와라가 사준 첫 양복이었다. 그는 양복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역시”

그 안에는 편지봉투가 들어있었다. 봉투를 열고 그 안에 세번 접혀 있는 편지를 먼저 꺼냈다.

[자기가, 이 편지를 몇번째에 발견할까? 세번째쯤이었으면 좋겠다. 나한테 가장 소중한 코우시가 제일 처음으로 번 돈으로 준 이 옷은 내겐 너무 큰 의미야. 그 어떤 옷보다 제일 귀해. 아직 이 옷을 받았을 때 그 벅참이 이 옷 곳곳에 새겨져있어, 언젠가 물었지 자기가 왜 이 옷을 안입고 다니냐고, 못 입고 다니는거야. 이 옷. 이 원단 사이사이 촘촘하게 새겨져 있는 자기가 나를 생각한 마음과, 이 선물을 받았을 때 나의 벅참. 그리고 그런 나를 보고 너무 예쁘게 웃었던 코우시의 웃음이 이 옷엔 한가득인데 그게 날아 갈까봐. 내겐 내 목숨보다 중요한 자기의 웃음인데 자기야 코우시, 내 세상, 내 우주 태어나줘서 너무 고마워, 그리고 이 몇 억의 인구중 나에게 와주고, 나를 선택해줘서 너무 고마워 생일을 축하해]

편지를 읽는 스가와라의 코끝이 또 한번 찡해졌다. 첫 계약금을 받자 마자 스가와라는 백화점으로 향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남성복 코너에 도착했다. 그의 옷 치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작업실에서 그가 그의 몸 치수와 맞는 마네킹을 제작해서 의상을 작업 했거니와, 오이카와와  맨살을 가장 많이 닿고있는 그가 그의 옷 치수를 모를리 없었다. 그는 평소 오이카와가 디자이너를 꿈꿨다던, 이유가 되었다던, 브랜드로 들어갔다.

스가와라에게 옷은 오이카와가 입혀주는 것 이외의 큰 의미는 없었다. 그가 없었을 적에는 매장에 디스플레이 되어있는 옷 그대로를 구입했다. 그를 만나고는, 항상 그가 외출하는 곳을 말하면 코디를 해줬고, 그렇게 다녔다. 오이카와의 말에 따르면 옷을 고르는 미적감각이 영프로에 수렴하는 스가와라에게 아무리 정장이라지만 옷을 고르는 일은 어려웠다. 차라리 이백페이지의 책의 교정을 보는 일이 더 쉬운 일이었다. 그런 스가와라가 백화점에서 한시간여를 고민을 하고 산 옷이었다. 몇 벌의 옷이 점원을 통해 그의 앞을 지나갔고, 마침내 그가 입었을 것을 상상했을 때 가장 멋있을 짙은 남색의 정장한벌을 골랐다.

누군가가 스가와라에게 연인과의 일상 중 가장 특별한 날을 꼽으라고 하면 그 또한 주저없이 말할 수 있다. 첫 계약금으로 그의 옷을 사고 그에게 선물을 줬을 그때라고,

선물을 받았을 때 오이카와의 눈엔 단 몇 초만에 눈물이 맺혔다. 그 정도로 감동받을 일인가.. 라는 생각에 괜히 머리만 긁적이다가 의자에 앉았다..

“코우시가 직접 골랐어?”

“응..진짜 백화점에서 한시간 있었어…….”

말이 끝나자 마자 오이카와는 스가와라를 끌어안았다. 그의 볼을 따라 눈물이 흘러내렸다. 스가와라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좋을까, 내가 직접 골랐다는 말이. 그게 그렇게 좋은 걸까. 생각했다. 그리고는 그가 써준 편지를 다시 읽었다.

“목숨보다 중요한 내 웃음이, 내 마음이 가득 들어간 옷”

그리곤 번뜩 생각나는 곳이 있었다. 그가 만들어준 자기 옷. 스가와라는 제 옷장을 열고 흰색의 정장 주머니에 손을 거침없이 집어 넣었다.

“야르”

그 안에서도 편지 봉투가 만져졌다. 오이카와가 디자이너로 데뷔를 하고 첫 쇼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선 스가와라에게 준 첫 옷이었다. 흰색에 정장.

“흰색이야?”

“응”

“검은색이면 매일 입고 다닐텐데”

“응, 그래서 특별한 날만 입으라고”

“예를 들면?”

“나한테 장가오는 날?”

“야!”

그랬다. 오이카와는 특별한 날, 기분 좋은 날. 오늘은 왠지 좋은 날. 그런 날 입고 제게 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옷을 선물했다. 그 날 이후 이 옷은 옷장안에 쭉 놓여져 있었다. 관리 안 했던 옷 치고는 옷이 빳빳했다. 분명 오이카와였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으면 그 무엇도 제 모습을 유지할 수 없다. 오랫동안 텅 빈 집이 그래서 빠르게 부식이 되고, 사람 손 탄지 오래 된 전기제품이 고장나는 이유다. 말리지 않아 갈라지던 스가와라 제의 머릿결이 오이카와의 손을 타고 머리에 윤기가 나 듯. 옷 또한 자주 꺼내 입어야 제 모습을 유지한다. 오이카와였을 것이다. 언제나 이 옷을 스가와라가 입을것을 상상하며 한번도 입지 않은 옷을 드라이를 하고 풀을 주고, 다림질을 하며 옷을 관리했을 것이다.

스가와라는 오이카와에게 물들고 있었다. 아직. 그게 좋은지 안 좋은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점점 매운걸 먹고나면 오이카와가 좋아하는 우유빵으로 후식을 했고, 그동안 모든 선물을 상품권으로 하던 그가 오이카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이 무엇일까, 고르고. 머리를 말리고. 누군가와의 결혼을 절대 못 할 거라던 절대 의지는 안 할 것이라던 자기가, 이 집안 곳곳을 보고, 내가 오이카와라면. 이라는 생각을 하며 집안에서 그에게 특별한 위치를 찾고 있었다.

빤히 옷장안에 흰 정장을 바라보던 그는 옷을 꺼내 침대위에 올려 놨다.

총 사만 이천엔이 그의 주머니에 쌓여갔다. 그의 옷에서 만엔. 그리고 자기의 옷에서 만엔. 그리고 딸기향 콘돔 두개를 침대위에 종류별로 올려놨다. 왼쪽엔 돈을, 가운데엔 편지를 오른쪽엔 콘돔을.

“봐봐 지금 콘돔이 7개인데.. 지금 최소 8개는 된다는 소리잖아. 잠깐, 이거 내 선물만 있는게 아닌 거 같은데?”

그때 휴대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어맛 깜짝이야”

오이카와였다.

“응~”

“아 응이 뭐야 다시해줘”

“아 손 진짜 많이가 토오루”

“어서 빨리”

“네 여보세요~”

“네 여보입니다”

“하나도 재미 없거든..”

“난 재미있는데, 나 지금 퇴근해”

“벌써?”

“벌써라니 6시입니다만..”

“아..”

“다 못찾았구나 하하하”

“어디어디 숨겼어. 말해줘”

“옷장 찾았어?”

“당연하지”

“내 옷장?”

“응”

“자기 옷장은”

“당연히 찾았지”

“그걸 찾았는데 다른 걸 못찾았다고?”

“응..”

오이카와는 의아한듯 목소리를 높여가며 말했다. 그러면서도 아직 다 찾지 못했다는 스가와라의 말에 가장 찾기 힘들었을 장소를 말한 그였다. ‘다른 곳은 쉬운 곳인데’ 오이카와는 속으로 생각했다.

“에, 보물찾기인데 이정도 힌트 줬으면 다 준거지 나 집집 갈 때 까지야! 땅땅 오이카와상은 삼십분 내 도착 예정입니다~”

장난끼 어린 그의 목소리에 스가와라는 할말을 잃었다.

“허?”

통화를 끊은 스가와라는 시간을 확인했다. 여섯시 십분. 그는 삼십분 걸린다고 했지만. 삼십분에 도착할 그였다. 스가와라는 침대 위 가지런히 놓여있는 흰색의 빳빳하다 못해, 옷에서 광택이 나는 듯한 옷을 집어 들었다.

오이카와는 사실 놀랐다. 편지에는 세번째쯤에 찾아줬으면 좋겠다. 라고 써놓긴 했지만, 아마 가장 마지막까지 못 찾을 장소가 자기의 옷 안이라고 생각 했다. 스가와라는 무뎠고, 무뎠다. 그런 사람을 사랑한 자기가 감내해야하는 일이라 여겼다. 그런 스가와라가 제 옷을 찾았고, 본인의 옷에서 콘돔을, 아니 편지를 찾았다는건, 그도 자기와 같은 마음 이었을거라 오이카와는 짐작했다. 운전대를 잡은 손이 가벼웠다. 라디오를 틀지 않아도 그의 콧노래로 차 안이 기분 좋은 음악으로 가득 찼다.

스가와라는 거울 앞에서 머리를 정리했다. 두 손 잔뜩 왁스를 덜어 머리를 세팅했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 거울안에 마주하자 스가와라는 흠짓했다.

“아냐, 아 아냐. 오바야”

그 길로 스가와라는 화장실로 들어가 머리를 다시 감았다. 수건으로 머리를 툭툭 털던 그는 다시 화장대에 앉아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고, 자기에게 가장 잘 어울려서, 고등학교때부터 항상 하고다닌 머리를 했다.

“그래, 뭐든 자연스러워야해”

그제야 만족한 그는 침대위에 누워있는 옷을 일으켜 세워 옷방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그때 오이카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코우시 나 왔어~”

오이카와의 소리에 스가와라는 옷장 문을 열고 나왔다. 순간 오이카와는 숨을 쉴 수 없었다.

“…… 왜? 안어울려?”

스가와라는 옷이 어색한지 손으로 어깨를 털며 오이카와를 바라봤다.

오이카와의 눈에 비친 스가와라는 한송이 목련, 아니 그냥 천사 그 자체였다. 그를 위해 만들어진 옷인 만큼 어깨 핏, 허리핏, 그 모든 부분이 모자람과 남는감 없이 완벽하게 들어맞았고, 언젠가 그가 입었을 때 가장 완벽할 수 있도록, 스가와라가 늦는 날이면 옷장에서 옷을 꺼내, 풀을 먹이고, 옷을 다리고. 환기 한번 시키고, 옷걸이에 다시 옷을 걸고는 그 사이에도 옷이 구겨질세라 손으로 탁탁 털고는 다시 옷장안에 걸어 놨다. 그 보람이 느껴졌다. 회색의 머리칼 아래로 백옥같이 흰 피부, 그래서 더 도드라지는 갈색의 눈. 그 아래로 흰 수트를 입은 스가와라는 오이카와가 상상했던 그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아니, 너무 잘 어울려”

스탕달 신드롬이라는 것이 있다. 너무 아름다운 작품을 보고 감격과 환희에 휩싸여서 심장이 빨리 뛰거나, 우울감이 오거나 하는 증상을 말한다. 평소 오이카와는 그런게 어디 있냐고 생각을 하고 살았었다. 하지만 스가와라를 보고 있는 지금 오이카와는 아. 진짜 있는 신드롬이구나. 했다. 오이카와는 스가와라를 보고는 감격에 눈물이 났다.

“어? 토오루? 어?”

스가와라는 놀라 그에게 달려가 그를 안았다.

“왜 울어 무슨 일 있었어?”

“아니, 니가 너무 이뻐서, 진짜 너무 너무 이뻐서 태어나줘서 고마워 코우시, 생일 축하해”

오이카와는 흐르는 눈물 사이로 스가와라 입술에 제 입술을 맞췄다. 스가와라는 기다렸다는 듯 오이카와의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넘겨 쓸었고, 셔츠 넥카라에 메여있는 타이를 풀어 바닥으로 던지고는 단추를 풀었다. 그에 질세라 오이카와도 스가와라의 자켓, 셔츠를 구겨질 듯 벗겼다. 누가 더 급한지 경기라고 하는 듯 둘의 움직임은 격해졌다.맞 닿아진 입술에선 따뜻한 숨이 오가고 있었고, 서로를 탐하는 손은,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바빠졌다.

둘이 함께 있을 때, 시간의 흐름은 무의미했다. 한순간도시간이 느리다 생각 하지 않았다. 오이카와가 퇴근을 하고 집에 도착한 시간은 여섯시 반쯤이었고, 지금 둘이 침대에서 가장 솔직한 모습으로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시간은 열시가 넘는 시간이었다.

“배고프다”

제 위에서 아직 아쉽다는 듯 그를 내려다 보는 오이카와에게 스가와라가 말했다.

“나는 안고픈데”

“나는 고파”

“나는 한번 더 할 수 있어 콘돔 아직 남은거 많아…”

오이카와가 그를 지긋이 바라보면서 남은 콘돔을 가리켰다.

“야.”

오이카와는 그의 이마에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쪽 소리가 크게 나도록 입맞춤을 했다. 그리고는 침대에서 일어나 침대 옆 서랍에서 잠옷을 꺼내 입었다. 바닥엔 허겁지겁 벗은 외출복과, 콘돔 껍질이 여러장 널브러져 있었다.

“코우시”

“응?”

냉장고에서 식빵을 꺼내 토스트기에 구워서 우유와 함께 침대로 들고왔다. 침대에서 일어나 헤드에 기대 앉은 스가와라의 몸엔 오이카와의 흔적으로 장미 잎들이 흩날렸다.

“무슨 뜻이야?”

“뭐가”

식빵을 한입가득 씹고는 오물거리며 스가와라가 대답했다.

“아니, 옷”

스가와라는 오물거리다가 크게 꿀꺽 소리가 나도록 식빵을 넘기고 흰 우유를 벌컥 마셨다. 그의 입 꼬리엔 흰색의 날개가 생겼다.

“나, 이제 할 수 있을 것 같아.”

“뭐를?”

“너랑 결혼하는거”

 “…어?”

현실감이 없는게 어떤건지 그동안 오이카와는 알지 못했다. 항상 치열했다. 천재적 재능이 아닌 정말 구십구프로의 노력으로 만들어낸 자기의 인생은 항상 현실의 연속이었다. 힘들었고, 노력했고, 그렇게 넘지 못했던 그 모든 선들을 두번, 세번 노력해서 넘어왔었다. 그런데 지금은 스가와라가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한번에 다가오지 않았다.

“자기가 그랬잖아. 자기한테 장가 올 때 입으라고 이 옷. 이제 나 자기랑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아”

“코우시..”

오이카와의 눈엔 다시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울지마, 아무것도 없어”

스가와라는 잠옷 주머니에서 지폐 몇 장과 동전 몇 개 그리고 편지를 한가득 쥐어 꺼냈다.

“내 웃음이 목숨보다 귀하다는 사람을 내가 어떻게 사랑하지 않고 배겨”

오이카와는 그렁이는 눈물을 기어코 흘리며 스가와라를 끌어안았다.

“울지마 반지도 뭣도 없는 프로포즈야, 내가 이번 계약잔금 받으면, 우리 토오루 손에 대빵만한 다이아 껴줄게”

“내가 진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해줄거야, 코우시”

“응 그래야지, 토오루”

“응,꼭”

“나 궁금한거 있어”

“어떤거? 말만해 내가 다 알려줄거야”

그는 끌어안은 스가와라의 어깨에 더 파고들어 안았다

“내가”

“응응”

“사만 이천엔은 찾았거든, 나머지 팔천엔 어디뒀어?”

“흐,끅끅”

오이카와는 그의 어깨에 얼굴을 아주 묻은채로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아,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털 나는데, 나 엉덩이에 털 난 남자랑 결혼하게 되는건가”

“아 쫌 진짜”

그의 장난기 어린 말에 어깨에서 고개를 뗀 오이카와는 고개를 돌려 현관을 바라봤다 그의 시선을 따라 스가와라도 현관으로 시선을 옮겼다.

“어쩜, 오늘 밖에 나갈 생각을 한번도 안했어?”

“아..”

둘의 시선이 닿는 현관문 중앙엔, 스가와라의 몸에 핀 빨간 장미잎보다 더 빠알간 하트가 그려져 있는, 편지봉투가 붙어 있었다. 둘의 시선이 같은 곳에 머물자, 둘의 공간 안에는 스가와라 코우시, 오이카와 토오루 둘의 웃음소리로 가득찼다.

* 2018 Sugawara Koshi's Birthday art collaboration home-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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