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츠키스가] 사랑의 온도
W. 보비
츠키시마 케이는 ‘이벤트’라는 것에 둔감한 편이었다. 츠키시마가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중학생 때의 일이었다. 그보다 더 어릴 때만 해도 부모님 혹은 형이 츠키시마의 생일을 꼬박꼬박 챙겼다. 그러나 그 해의 츠키시마의 부모님은 바빴고, 형은 대학생이 되어 정신없는 날을 보내고 있었다. 집안의 모든 사람이 츠키시마의 생일을 잊어버렸다. 생일을 맞은 본인마저도. 츠키시마의 열네 번째 생일이 그냥 지나버렸다는 것을 가족들이 안 것은 일주일이 지난 후였고, 부모님과 형은 츠키시마에게 사과를 해왔지만 츠키시마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야마구치가 생일 선물 줘서 괜찮은데. 부모님과 형은 그게 저들을 위로하는 말이라 생각했지만 츠키시마는 그저 사실을 뱉은 것일 뿐이었다. 게다가 매해 가족들의 생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이 그 이상의 사과를 받는 것도 민망했다.
생일, 남들은 무척이나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적어도 츠키시마에게는 아니었다. 제 생일이 중요하지 않으니 다른 사람의 생일도 마찬가지였다. 가족들의 생일이야 츠키시마가 까먹더라도 다른 가족이 챙기니 상관없었고, 가족들을 제외하고 생일을 챙겨줘야 할 사람이라곤 야마구치가 전부였다. 그나마도 야마구치는 저가 먼저 오늘 생일이라며 이야기를 하는 편이었다. 등굣길에 생일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날 오후에 함께 맛있는 걸 먹으러 가거나 야마구치에게 필요한 것을 같이 사러 가는 것이 츠키시마가 아는 생일 이벤트의 전부였다.
그러니까, 대체 뭘 해야 하는데? 한 손으론 턱을 괸 채 마우스를 쭉쭉 내리던 츠키시마가 이내 창을 닫았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본다 한들 제게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부모님과 제 형, 그리고 야마구치의 생일을 떠올려 봐도 도움이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가족의 생일이나 친구의 생일이 아니었다. 연인.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감정을 갖게 한 그 주인의 생일이었다. 미간이 잔뜩 좁아진 츠키시마가 달력을 보며 긴 한숨을 내뱉었다. 고민은 한 달 전부터 시작했는데, 생일은 이제 2주가 채 남지 않았다.
누군가의 생일을 물어보고, 메모하고, 기억하고, 기다리고, 준비하는 것. 츠키시마에게 그 모든 일은 처음이었다. 스가와라 코우시가 아니었다면 하지 않았을 일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토록 신기하고 신비로운 일이었다. 무얼 하더라도 스가와라가 기뻐할 것은 잘 알고 있다.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니까. 하지만 조금 더 환하게 웃게 해주고 싶었다. 생일이라는,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난 특별한 날에는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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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와라의 생일까지 2주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츠키시마는 혼자서 고민하기를 그만뒀다. 혼자서 고민해봐야 여태 다른 사람의 생일은 물론이고 제 생일마저 제대로 챙겨본 적 없는 자신이 좋은 답을 내놓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츠키시마는 우선, 가장 편하게 물어볼 수 있는 상대를 찾았다.
“생일선물? 츳키가?!”
“시끄러워, 야마구치.”
“미안, 근데 츳키가 선물을 한다니까 좀 놀랍잖아. 흐음, 글쎄, 뭐가 좋을까. 난 필요한 거 받는 게 제일 좋던데.”
“…스가와라 선배는 뭐가 필요해 보여?”
“스가 선배? 그을쎄, 스가 선배는 필요한 건 다 혼자 해결하는 것처럼 보여서… 딱히 생각이 안 나네. 미안, 츳키.”
스가와라에게 필요한 것. 스가와라의 생일을 기다리며 줄곧 생각했지만 이렇다 할 만큼 좋은 것이 생각나지 않았다. 저보다 스가와라를 더 가까이서 지켜본 것도 아닌 야마구치가 필요한 것을 생각해낼 수 있을 리 없었다.
미안하다는 야마구치의 말에 츠키시마는 입을 꾹 다물고는 생각에 잠겼다. 이제 대학생이 된, 저보다 더 넓은 세계를 살고 있는 스가와라에게 필요한 것, 필요한 것…. 차라리 작년이었다면 배구라도 열심히 해서 그가 더 많은 경기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선물했을 거다. 그렇지만 스가와라는 더 이상 가쿠란을 입고 있던 고등학생도, 저와 같은 배구부도 아니었다.
기왕이면 좋은 걸,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수 있는 그런 것을 선물로 주고 싶다. 그냥 스쳐지나가는 한 번의 생일에 지나지 않게. 처음으로 함께 맞이하는 생일이니까. 츠키시마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6월, 녹음이 짙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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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에게 묻는 것에서 답을 찾기를 포기한 츠키시마는 번화가로 나가보기로 했다. 야마구치 말고도 다른 사람들에게 스가와라의 생일 선물이 뭐가 좋을지 물어보기는 했다. 부활동을 하는 동안 스가와라와 저보다는 많은 시간을 보냈던 히나타에게 물었으나 예상대로 별 도움이 되지 못했고, 같은 포지션이었던 카게야마 또한 마찬가지였다. 생일선물로 받은 것 중엔 서포터가 제일 좋았다느니 새로 나온 스포츠 타올이 좋았다느니 하며 왕왕거리는 바보들을 보며 츠키시마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애초에 저 바보콤비는 도움이 안 될 줄 알았지. 기대도 안했지만….
서포터며 스포츠 타올 소리에 타나카와 니시노야 마저 합세했다. 새로 나온 타올이 어떤데?! 생일 선물로 시작한 대화는 스포츠 용품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츠키시마는 한숨을 쉬었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엔노시타가 츠키시마에게 말했다. 우리보다는 상점 점원 쪽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츠키시마. 아니면 사와무라 선배나….
확실히 엔노시타의 조언은 바보 콤비와 다른 두 선배에 비하면 도움이 되는 편이었다. 스가와라의 얼굴도 본 적 없는 상점의 점원보다야 사와무라 쪽이 조금 더 도움이 되기야 하겠지만 왠지 그 쪽의 도움은 받고 싶지 않았다. 사와무라나 아즈마네의 도움을 받아 선물을 선택한다면 그건 자신이 아닌 그들이 고른 선물이 되는 것 같았다.
“도와드릴까요? 어떤 걸 찾으세요?”
“아… 선물, 을 하려고 하는데요. 생일 선물요.”
“따로 생각해둔 건 있으세요?”
츠키시마는 점원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생각은 나지 않았다. 해주려고 하면 모든 걸 해주고 싶었고, 조금이라도 모자란 건 싫었다.
처음에는 넥타이를 선물할까 했다가, 이제 막 대학에 간 사람에게 하기 에는 부담스러운 선물일 것 같아서 마음을 접었다. 목걸이나 반지를 생각하기도 했는데 그쪽도 스가와라가 부담스러워 할 것 같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백화점을 몇 바퀴나 돌고 돈 츠키시마가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찾은 곳은 1층에 위치한 시계 매장이었다.
“선물 받으실 분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이제 대학생요. 시계는… 여태 잘 안 찼던 편이라서, 가벼운 거였으면 좋겠는데요.”
늘 비어있던 스가와라의 손목을 떠올렸다. 제 손목과 마찬가지로 줄곧 배구를 해온 스가와라는 평소에도 시계를 차는 일이 없었다. 고등학교의 졸업과 함께 배구도 졸업이라고 했던 스가와라였다. 그의 손목에 처음으로 채워질 시계를 자신이 선물한다는 것은, 꽤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츠키시마의 말에 점원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쇼윈도에서 몇 개의 시계를 꺼냈다. 이 제품이 20대분들한테는 가장 잘 나가는 제품이에요. 계절 상관없이 착용하기도 좋구요, 말씀하신대로 가볍고. 가벼운 운동 정도는 무리도 없답니다. 츠키시마가 별다른 말이 없자 점원은 함께 꺼낸 다른 시계를 들어보였다. 아니면 이 제품도 괜찮아요, 무난한 디자인이고……. 쭉 이어지는 점원의 말을 듣던 츠키시마가 가장 처음 내밀어진 시계를 가리켰다.
“이걸로 포장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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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은 수업 없는 날!]
부활동을 가며 핸드폰을 확인했을 때, 스가와라에게서는 짧은 메시지와 함께 사진 한 장이 도착해 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스가와라의 뒤로 펼쳐진 풍경은 아무리 봐도 도쿄로는 보이지 않았다. 무척이나 익숙한, 익숙한…. 사진 속 풍경을 어디서 봤는지 고민하다보니 어느새 체육관 앞이었다. 츠키시마의 발이 우뚝 멈췄다.
“선배가 왜 여기 있습니까.”
“케이 군, 오랜만에 애인을 보는데 그런 반응은 좀 너무한 거 아냐?”
작년 여름의 어느 날처럼, 얇은 반팔 티셔츠에 카라스노의 검정 저지를 걸쳐 입은 제 애인이 체육관 앞을 지키고 있었다. 츠키시마보다 먼저 체육관에 도착했던 2, 3학년들은 스가와라와 인사를 나눴는지, 체육관의 문 뒤에 숨어 츠키시마의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연락이라도 좀 하고 오지 그랬어요….”
“응, 사진 보냈잖아?”
아니, 그러니까 그런 의미가 아닌…. 말을 이어가던 츠키시마는 뒤쪽의 반짝거리는 눈동자들을 보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곤 곧장 스가와라의 손목을 붙잡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어제부터 생일 카드를 쓰느라 가방에는 스가와라의 선물이 들어있었다.
이런저런 말없이 부실로 스가와라를 데려온 츠키시마는 자신이 실수한 건 아닐까 고민했다. 자신을 보러온 게 아닐 수도 있고, 그냥 생일이라 가족들과 함께 보내고 싶어 온 것일 수도 있다. 이번 주 주말이 스가와라의 생일이었다. 부실 정리 안 되는 건 여전하네, 같은 소리를 하며 이리저리 휘휘 둘러보는 스가와라의 동그란 머리를 보던 츠키시마가 입을 열었다.
“저기, 선배.”
“응?”
“미안합니다.”
“응? 뭐가?”
이건 여기 그대로 뒀네, 아직도. 마지막으로 본지 고작해야 몇 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부실을 돌아보며 중얼거리던 스가와라의 환한 얼굴이 츠키시마에게로 향했다. 웃음기가 가득한 얼굴을 보자 미안한 마음이 이상하리만치 더 커졌다. 이상하게 이 사람 앞에 설 때면 늘 이런 마음이 돼버린다. 왠지 모르게 위축되고, 수그러들고, 실수하진 않았을까 전전긍긍하게 되고. 여태까지의 자신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미간을 찌푸리며 입술을 짓씹은 츠키시마가 말을 이었다.
“멋대로 부실로 데려온 거요. 뒤쪽에 바보들을 보니까 좀… 순간적으로 그랬어요. 선배가 저만 보러 학교에 온 건 아닐 텐데…”
“무슨 소리야, 츠키시마.”
줄줄 이어지는 말에 웃고 있던 스가와라의 얼굴이 굳었다. 생일이랍시고 여기저기 불러대는 곳이 많았지만 죄다 물리치고 한달음에 미야기까지 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아직도 부실 문 앞에 서있던 츠키시마의 앞으로 스가와라가 바짝 다가왔다.
“너 보러 온 거야, 내 애인님.”
“아…”
“선물 주세요, 케이 군.”
순식간에 눈앞으로 바짝 다가온 얼굴과 그 입에서 나오는 제 이름에 츠키시마의 얼굴이 붉어졌다. 같은 부의 선후배에서 사귀는 사이가 된 후로 이전보다 가까이 있었던 적은 많았지만, 츠키시마는 아직도 이 정도의 거리에는 면역이 없었다. 그래도 피하고 싶지 않다. 저를 올려다보는 이 눈동자를, 그 안에 자신만이 오롯이 담겨있는 이 순간을.
붉어진 얼굴을 애써 감추지는 않기로 했다. 숨겨지지도 않고, 이렇게나 가까운 거리에서는 점점 더 붉어질 뿐이니까. 츠키시마는 스가와라의 머리카락을 살짝 쓸어 넘겼다. 보통 사람보다 체온이 조금 낮은 덕분에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얼굴에 닿아오는 츠키시마의 손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스가와라가 다시 웃어보였다.
“제가 선물 안 준비했으면 어쩌려고 연락을 이렇게 늦게 했어요.”
“준비 안했어도 괜찮아, 케이가 선물이잖아?”
“선배는 진짜 그런 소리를…”
“아니야?”
스가와라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기껏 가라앉혔다고 생각했던 얼굴이 순식간에 다시 붉어졌다. 츠키시마는 결국 다른 손으로 제 얼굴을 가렸다. 스가와라가 츠키시마의 허리에 팔을 두르며 다시 물어왔다. 케이이, 아니야? 제 이름을 길게 빼며 묻는 말에 츠키시마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스가와라에게 입술을 내렸다. 짧은 입맞춤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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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인 만큼 당장 데이트를 하러 가자는 말을 스가와라는 단박에 거절했다. 인터하이가 코앞인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스가와라는 츠키시마의 손을 잡아끌고 체육관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줄곧 연습이었다. 처음 보는 1학년까지 그 특유의 미소로 휘둘러가며 공을 올려댔다. 생일을 맞아 고향에 내려온 애인과 데이트를 하지 못하는 것은 속상했지만, 즐거운 얼굴로 공을 올리는 것을 보는 건 츠키시마에게도 즐거운 일이었다.
스가와라가 있다고 해서, 그의 생일이 내일이라고 해서 연습이 빨리 마치는 법은 없었다. 애초에 스가와라가 용납하지 않을 일이기도 했다. 2년을 동고동락했던 선배와 오랜만에 합을 맞춘 3학년들은 신이 나서 스가와라의 이름을 불렀다. 히나타도, 야마구치도,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카게야마까지도.
그래도 눈치 빠른 야마구치 덕분에 츠키시마는 뒷정리에서는 제외됐다. 스가와라가 먼저 샤워실로 향하고, 뒷정리를 하던 츠키시마에게 야마구치가 달려와 자기가 할 테니 먼저 가보라며 눈을 찡긋해보였다. 평소 같으면 눈병이라도 낫냐며 한 마디 했겠지만, 오늘의 츠키시마는 고맙다며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기까지 했다. 그 모습에 카게야마와 히나타는 내일 지구가 뒤집어져서 인터하이에 출전 못하는 게 아니냐며 난리를 피웠고, 야마구치는 감격에 젖은 얼굴을 해보였다.
가벼운 샤워를 끝낸 두 사람은 손을 맞잡은 채로 학교를 벗어났다. 매일같이 하는 운동이었고, 오랜만에 하는 운동이었지만 마주잡은 손의 체온 덕분인지 발은 가벼웠다. 주로 스가와라가 이야기를 하고, 츠키시마가 대답을 하는 대화가 이어졌다. 야마구치도 리시브가 많이 늘었더라. 연습 많이 하니까요. 타나카랑 니시노야는 3학년이 되도 똑같고 말이야. 그러고 보니 오늘 야치를 못 봤네. 교외 대회가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렇구나.
두 사람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스가와라의 집으로 향했다. 스가와라가 졸업하기 전까지는 매번 이렇게 같은 길을 걸었었다. 처음은 야마구치가 서브 연습을 하러 가고 츠키시마 혼자서 집을 가던 어느 날이었다. 스가와라가 뒤에서 따라왔고, 그렇게 츠키시마의 집까지 함께 걸어갔다. 별다른 이야기를 주고 받지도 않았었다.
그때는 이렇게 될 줄 몰랐지. 스가와라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던 츠키시마가 눈 앞의 벤치를 발견하고는 우뚝 발을 세워다,
“왜?”
“잠깐 앉았다 가요.”
오래된 가로등, 그리고 오래된 벤치. 스가와라를 바래다 줄 때면 늘 쉬어가곤 했던 자리였다. 벤치를 확인한 스가와라가 츠키시마를 돌아보며 웃었다.
“오랜만이네, 여기.”
스가와라와 나란히 앉은 츠키시마는 뒤로 둘러맸던 가방을 앞으로 가져오더니 가방 속을 뒤적였다. 교과서와 공책 몇 개가 들어있던 가방 속에서 각진 상자는 금세 손에 쥐어졌다. 스가와라는 츠키시마가 하는 모양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내내 손을 꼼지락거리고 제 눈치를 보기에 뭔가 가져온 것 같다는 눈치를 채기는 했던 터였다.
카드와 상자를 함께 꺼낸 츠키시마가 스가와라를 향해 쑤욱,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보다 큰 검정색의 상자를 내려다보던 스가와라가 두 손으로 상자를 쥐었다.
“이거, 내 선물?”
“…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네요.”
“케이가 주는 거라면 뭐든 마음에 들 거야. 내 생각하면서 고른 거잖아?”
츠키시마는 홧홧하게 열이 오르는 뒷목을 주무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말할 줄 알고야 있었지만, 예상한다고 하더라도 열이 오르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츠키시마를 보며 살짝 웃은 스가와라가 예쁘게 묶인 은색의 리본을 풀더니 천천히 상자를 열었다.
“우와, 나 시계 필요한 거 어떻게 알았어?”
“그냥요, 뭐. 이제… 시간관리 필요하니까요.”
“고마워, 케이. 잘 쓸게. 진짜, 진짜 고마워! 카드도 지금 읽어봐도 돼?”
그 말에 아니요, 라고 말할 틈도 없었다. 물어본 건 허락을 구하기보다는 통보하기 위함이었던 듯, 스가와라의 손은 이미 카드를 열고 있었다. 이미 열어버린 카드를 잡아챌 수도 없어서 츠키시마는 제 얼굴을 가렸다. 카드에 쓴 말에 진심이 아닌 말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 진심을 받는 당사자가 제 앞에서 글자를 읽는 것은 꽤 부끄러운 일이었다.
츠키시마가 얼굴을 가리거나 말거나 스가와라는 카드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부끄러워하는 연인이 귀여워서 소리 내어 읽으려고 했는데, 눈 안에 들어오는 글자를 확인하는 순간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차마 밖으로 뱉기에는 예쁜 마음이, 말이 그 안에 쓰여 있었다. 여태 하얗기만 하던 스가와라의 얼굴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어, 흠흠, 잘 쓸게, 고마워.”
“일부러 가벼운 걸로 골랐어요. 카드에도 썼지만…”
하지만 제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츠키시마를 보자 붉은 얼굴 아래로 묻혀있던 스가와라의 장난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스가와라는 씨익 웃으며 츠키시마를 향해 선물 상자를 흔들어 보였다.
“응, 고마워. 케이 말대로, 매일 시계 볼 때마다 네 생각할게?”
“…놀리지 마세요.”
“놀리는 거 아닌데, 고마워서 그러는건데? 너무 좋아서!”
“놀리시는 거 압니다….”
바닥을 뚫어버릴 것 같은 츠키시마의 낮은 목소리에 스가와라가 웃음을 터트렸다. 케이, 나 좀 봐봐, 응? 잘생긴 얼굴 좀 보여줘. 생일이잖아. 커다란 손으로 자꾸만 제 얼굴을 가리는 츠키시마와 눈을 맞추려 스가와라가 제 얼굴을 들이밀었다. 스가와라의 차가운 손이 츠키시마의 손에 닿고, 얼굴에 살짝 닿았다가, 두 손이 아래로 떨어졌다.
조금 어두운 낡은 가로등 아래, 낡은 벤치.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의 입술이 서로를 찾았다. 여름을 맞이한 풀벌레 소리가 길가에 길게 울렸다. 물기를 머금은 소리와 함께 입술이 떨어지고, 츠키시마가 스가와라의 양 볼을 감싸고는 천천히 말했다.
“생일 축하해요, 코우시.”
“응, 고마워. 나도 얼른 케이 생일 축하해주고 싶다.”
“앞으로도 계속 축하해주고 싶어요.”
다정한 말이 공기를 타고 스가와라에게로 흘러왔다. 스가와라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츠키시마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확실히, 조금 덥다. 자신이 태어난 계절은 그랬다. 조금씩 더워지는 계절. 그러나 이 온도는, 분명.
사랑의 온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