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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cian Foxglove

W. 성단

"코우시, 저녁에 케이크 사놓을 테니까, 그때 생일 파티하자~"

 

"네, 알겠어요- 빨리 올게요!"

 

"응 그래, 학교 잘 다녀오렴"

 

"다녀오겠습니다~"

 

6월 13일.

스가와라 코우시의 생일.

내 생일.

 

하지만 오늘 나는, 학교로 가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다.

오히려 무거워.

인터하이 예선 탈락.

잃어버린 의욕과 눈빛의 총기를 되찾을 시간도 없이
자의로, 타의로 다시 봄고 예선을 위해 달리고 또 넘어져야 한다.


그런 와중에

이런 상황에

 

내 생일이라고, 어디에다 말을 할 수도 없고 알아달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면 안 될 거 같다, 더 솔직하게 말을 하자면.

그냥 매년 돌아오는 생일이고 고2씩이나 돼서 생일을 챙기려 하는 것도 좀 그렇잖아?

응, 그렇게 생각하면 편하다.

그냥 오늘은 수많은 오늘 중에 하루일 뿐.

특별한 건 없다.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내일을 위해 뛰고, 뛰어오르고, 구르고.

그렇게 매일을 보내면 무감각해지기 마련이다.

그냥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것뿐.

무력하고 무의미하게 오늘을 보낸다는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미뤄놓을 거야.

봄고, 봄고 예선만 생각하자.

 

체육관 문을 열어젖히며,

문턱을 넘어가며,

생일인 스가와라를 잊는다.

 

"스가. 오늘 생일 축하해."

"스가, 오늘 생일이지? 생일 축하한다!"

"스가. 생일 축하해~"

 

"기억하고 있어 줬네, 고마워."

 

동갑이라서, 처음부터 같이 걸어와서일까.

오늘 중 유일하게 내 생일을 챙겨주는 건,

나조차도 문밖에 버리고 온 생일을 주워들어 내 손 위에 올려주는 건.

너희들뿐이네.

조금 더 신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데, 너희에게 고마움을 더 확실하게 전하고 싶은데,

그러면 안 되겠지.

하면 서로에게 아픔이지 않을까.

 

별것 아니라는 듯, 차분한 내 반응에 그 누구도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는다.

응. 그것도 고마워.

 

꼭 언젠가, 제발 언젠가.

이왕이면 졸업하기 전에 마음껏 생일을 기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누구의 탓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서운한 걸 보면, 나는 아직 덜 자란 걸까.

 

연습시간 언제나 체육관을 울리는 크고 가볍지 않은 소리 속에 부원들의 눈빛은 한없이 침체되어있는, 
그 지겨운 익숙함.


또 똑같은 아침 연습을 했어.

모두의 등에 들러붙어 있는 압박감과 단념이 보여오곤 스멀스멀 내 등을 덮쳐와 나 역시도 옮을 거 같아.

 

아사히, 너에게 공을 올려줄 때에도.

다이치, 너에게 공을 이어줄 때에도.

시미즈, 너와 일지를 뒤적일 때에도.

 

나, 스가와라 코우시의 생일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럴 때가 아니야.

정신 차려.

여기서 소홀히 하면 또 패배만 맛볼 뿐이야.

패배는, 그 뒤의 그 침울한 분위기와 억지웃음은

이제 지긋지긋해.

억지로 떼어놓은 나의 생일은,

무어라 한 번 소리도 꺼내지 못하고.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한데 섞인 그 등을,

내가 올려준 공이 막히는 그 모습은 그만 보고 싶어.

 

그러니까 나는 생일이 없다.

오늘은 그냥 또 반복되는 날일 뿐이야.

 

체육관 밖을 나서, 교실에서 수업을 듣는 동안에도

나는 체육관 앞에 덩그러니 홀로 놓인 생일을 주워 담지 않았다.

체육관 앞을 불안하게 서성이는 생일을, 나는 모른다.

 

"스가, 생일 선물."

 

눈을 깜박였더니 처음 보는 꾸러미가 보인다.

 

"오...오오오!! 고마워 시미즈! 우와 애들한테 자랑해야겠다!"

 

픽 웃고는 손을 흔들어, 멀어진다.

버석거리는 포장지를 벗기고 내 눈에 든 건,

배구공이 달린 열쇠고리.

오늘 중에 제일 크게 낸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스가~!"

"뭐야, 네거티브 수염!!"

"...스가...선물 사왔는데..."

"뭔데? 뭔데? 얼른! ...이게 뭐야, 엄청 매운 야까소바빵?!"

"며칠 전에 신상품으로 나왔다길래, 스가 아직 안 먹어봤을 거 같아서...!"

"오올~ 신경 좀 썼는데! 선물 고마워! 혹시나 안 매우면 너한테 먹일 거야 각오해~"

 

오늘 중에 제일 고등학생 코우시 같았고, 크게 웃었던 거 같아.

아사히, 선물 마음에 들었어.

고마워.

 

푸르스름한 어둠이 깔려와 하늘의 색이 섞여 있다.

익숙하고 그냥 그저 그런 연습을 끝마치고선 집으로 가는 길.

얼마나 익숙하고 또 얼마나 아득했으면 눈을 감았다 떠,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언덕 밑이었을까.

 

"스가--! 스가와라!!"

"다이치?!"

 

노을을 등에 지닌 채, 나를 향해 내달리는.

 

"이번 생일 선물, 올해는 이걸로 봐줘-"

"만두..? 다이치, 생일 선물이면 적어도 한 봉지는 줘야 하는 거 아니야~~?"

 

괜스레 눈을 가늘게 뜨고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마음에 꼭꼭 숨겨놓은 작은 투정을.

 

"그래, 기다려. 더 사올게"

"3분 안에 와~~ 딱 3분이다!!"

 

믿음직한 어깨와 등에

오늘도 고마워.

너에게 투정부려 미안해.

 

매미가 울기 시작했던 초여름, 6월 13일.

더위와 어울리지 않게 팔 한 아름 안아 들었던 만두.

어두운 파란색과 빨간색, 그리고 주황색.

복잡했던 내 마음만큼 여러 색으로 휘저어진 하늘의 풍경.

 

겨우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던 스가와라 코우시의 생일은,

약간은 허무하고 너무나도 조용하게 저물어.

 

 

"진짜 덥다~~~~!!!"

 

체육관 바닥에 잔뜩 널브러져 있는, 까마귀들

그 모습이 새삼 귀엽게 느껴져, 한번 둘러보고는 소리 없이 크게 미소를.

오전부터 한없이 솟구친 열정을 쏟아냈기에 당연한 열기로 가득 차 있는 체육관은 
문이란 문은 다 열어두어도 쉽사리 온도가 내려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공기가 후끈해

 

슬며시 불어오는 바람을 휴식 삼아 가만히 앉아선 열기를 내보내는데, 깨끗하고도 경쾌한 풍경 소리가 들려온다.

여름, 여름이구나. 벌써.

손닿을 거리에 주저앉아있는 너를 가만히 바라보다 이내 손을 뻗어 괜히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작년과 똑같아.

 

열기가 점점 심해지는 초여름, 내 열기를 토해낼 곳은 경기장 위 코트가 아닌.

또다시 반복된 인터하이 패배, 봄고 예선을 위한 연습의 하루가.

 

달라진 거라곤 고작 나의 학년과, 너희들이 있다는 것.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나는 작년과 확연하게 달랐다.

나에게 발전할 계기를, 좀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시간을,

그리고 같은 팀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복잡하고도 고마운지.

나는 3학년이 되어 너희를 만나서야 새로이 배워나갔고, 다시 깨닫게 되었다.

 

덕분에 생일은 떠올리지도 않고 벅차고도 더욱 힘차게 오늘까지 달려올 수 있었어.

 

그래서 오늘이 내 생일이라는 걸 아침에 부모님께 축하를 받고서야 깨달았지만.

 

마구 쓰다듬던 손을 떼었는데, 그 맑고 환한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다 입꼬리를 말아 올려 크게 미소 짓는다.

나도 따라, 웃는다.

 

활짝 열어놓은 체육관 사이로 햇빛이 찬란하게 조각나고, 또 비춘다.

은빛의 반짝이는 머리칼과 그런 너를 둘러싼 빛나는 눈들을.

수많은 일상 속 흔한 오늘을, 조금 특별하게.

지금 이 시간과 장면이 더 의미 있게.

 

누구한테 축하받지 않아도 오늘은 그저 행복할 거야.

기억 속 흐릿하게 지워놓았던 작년 생일과는 판이하다.

아무런 선물도, 어떤 축하도 없어도 괜찮아.

 

고작 몇 개월의 짧은 시간,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웃었고, 또 울었고, 또한 소중했음을.

 

한 번 더 뛰어오를 수 있는 힘을,

한 발자국 더 움직이고 싶은 간절함을,

나 스스로 더 확고하게 설 수 있던 시간을,

배구 선수 스가와라 코우시를 다시 일깨워준.

 

 

이 정도면 생일선물이라 할 만하지 않아?

 

"스가 선배, 오늘 끝나고 다 같이 저녁 먹을 건데 카레라이스래요!!"

"오, 진짜? 매웠으면 좋겠다!"

"....그..그것만은..."

 

너희들을 만나서

 

"스가! 합숙 일정 말인데-"

"그것보다는 이게 낫지 않아? 밤에 출발하니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

 

"....스가 선배, 머리에 나뭇잎이 붙어있어요."

"아 진짜? 떼어줘서 고마워!"

 

올해 생일을,

 

"스가 선배!!! 음료수 뭐 드실래요?!"

"나는~~~ 파란색!"

 

오늘을,

 

"스가, 쟤네 좀 봐봐"

"오 재밌어 보여!!"

 

잊지 못할 거야.

 

"스가, 생일 축하해."

"....고마워, 올해도 챙겨줘서!"

 

 

여전히 너희와 함께여서 정말 다행이야.

 

 

은빛 머리칼이 빠져나가곤 잔상마저 사라진 지금.

닫힌 문을 한참을 바라보다,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다.

 

"다들 챙겨왔어?"

 

눈을 한껏 반짝이던 모두가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2주 전부터 열심히 계획하고 준비한 대로 각자 자리를 찾아가서는

 

"스가 선배가 기뻐했으면 좋겠어요!"

"기뻐할 거야, 분명히."

 

"무슨 색이 더 잘 어울릴까요?"

"음.... 네가 보기엔 뭐가 더 스가 닮은 거 같아?"

 

"우와.... 고깔모자 진-짜 오랜만이다..."

"그치? 근데 이거 너무 스가 선배한테 잘 어울릴 거 같아서 사 왔지!"

 

"벌써 들킨 건 아니겠죠?"

"너만 티 안 냈으면 모르니깐 걱정 마."

 

"거기, 들고 있어 줘."

"이, 이 정도면 돼? 좀 더 높이 들어?"

 

"케이크 사 왔어!"

"응, 수고했어. 아이스박스에 넣을게, 이리 줘."

 

"폭죽은?"

"아까 오른쪽 서랍에 넣어놨어."

 

"선물 사 왔어요!!"

"수고했어~ 저-기 선물 상자 안에 넣어줄래?"

 

"스가 선배 지금 어딨어요?"

"잠깐 체육관 갔을... 어어, 야 거기 잘 잡아!!"

체육관 코트 위에 서 있을 때의 모습보단, 딱 그 나이 때 고등학생들처럼.

기대하는 눈망울들과 한껏 들떠있는 기분.

거칠한 손으로 정성스럽고 세심하게.

스가와라를 생각하는 마음 전부를 담아.

 

「 네가 기뻐했으면 좋겠어. 」

 

우두커니 서서는 한가득 떠 있는 별을 보며

아주 오랜만에 편한 마음으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쉬어.

 

'생일 별자리는 왜 생일날 안 보일까'

 

유독 반짝이는 별을 빤히 주시하다,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좀 더 들어.

 

"스가선배--!!!! 후식 아이스크림 내기로 가위바위보 한다는데 얼른 오세요!!"

 

"오, 좋지! 금방 올라갈게!"

 

약간 낡은 계단은 스가와라 코우시가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뎌 힘을 줄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었고, 마치 그 소리가 부원들한테는 카운트처럼 들려왔다.

 

"얼른 불붙여, 스가 선배 곧 올라온다고!"

"다다, 다 됐어요! 하나만 더 붙이면 돼요..!!"

"얼른 전등 꺼!"

"폭죽 준비 다 됐어?"

"케이크는?"

"케이크 여기 준비 완료입니다!!"

"으아아아 떨려..."

"쉬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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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

 

 

 

까만 밤을 담고 있는 문이 열리며,

스가와라,

스가와라 선배, 생일 축하해요!!!!!!!

누가, 누가 그랬던가

행복하면 눈물이 흐른다고.

적어도 너무나 행복한 지금은 눈물 흘리는 시간마저 아까운데.

 

 

"소원 빌고 촛불 끄세요!"

 

 


"스가, 생일 정말 축하해."

 

 

고맙다는 말로는 이 감정이 다 표현이 안 돼.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걸까, 눈에 담이고 박히는 모든 것들이 다 나를 위한 건데.

 

보이는 모든 게 너희들의 마음 같아서.

한 여름밤 어둠을 밝히는 우리의 빛이 정말 눈이 부셔서.

그 빛이 오늘만은 온전히 나를 향해서.


"...아 맞아. 체육관 주변 화단에 디기탈리스가 잔뜩 피었던데"

 

 

오늘을 너희와 함께해서 정말 행복해.

스가야 정말 생일 축하해.

네가 언제나 진심으로 밝게 웃었으면 좋겠어.

 

카라스노의 부주장,

든든한 선배,

불요불굴의 세터,

완전미지의 사령탑.

카라스노의 세터.

 

너의 열정, 승부욕, 친절함, 배려심, 천진함, 장난기,
꺾이지 않는 마음. 
앞을 똑바로 내다볼 수 있는 당당함.그 모든 것들을 정말 많이 사랑해.

 

태어나줘서 고마워.

 

스가와라 코우시. 생일 정말 축하해.

 

너라는 사람을 만나 함께 코트 위에 설 수 있음에 감사해.

너라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있음에 감사해.

 

생일. 정말 정말 축하해.

누구에게나 예쁨 받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너이기에,

 

앞으로도 그 예쁘고 환한 웃음 영원토록 보여줘.

너의 모든 생일을 우리가 늘 함께할게.

 

*디기탈리스의 꽃말 : 애정을 숨길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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