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스가] (무제)
W. 시촌
“스가, 너 뭐 좋아하는거 없어?”
훈련 중, 쉬는 시간. 다이치는 스가에게 다가가 다른 설명도 없이 대뜸 질문을 건네었다. 스가는 뜬금없는 질문에 온몸으로 당황스러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정작 질문을 한 다이치는 아무래도 뭐가 이상한건지 모르는 눈치였다. 허나 스가는 다이치의 마음을 알 수가 없으니, 당항하는 것은 당연했다. 갑작스레 다가와서는 좋아하는게 무엇이냐니. 그 답지 않은 문장이기도 했다. 그가 설명도 없이 무작정 물어보는 경우는 없었으니까. 어떻게 되물어야 다이치가 민망해 하지 않고 잘 넘길 수 있을까. 혹시 자신이 놓친 말이 있진 않을까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한 스가는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어.. 그런데 그건 왜 갑자기 묻는거야?”
스가의 되물음에 그제서야 다이치는 자신의 질문이 어딘가가 이상했음을 알아챘다. 본론을 들이대도 너무 들이대 버렸다. 필요한 설명도 하지 못했으니 스가의 답이 늦는 것이었다. 조금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던 그는 곧바로 평온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여전히 뭐가뭔지 모르는 스가는 고개를 갸우뚱 하고 있었다.
“곧 네 생일이잖아. 뭐 받고 싶은거 없나 해서.”
다이치의 추가된 설명에 아- 라는 짧은 감탄사를 내며 고개를 끄덕인 스가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무얼 받아볼까. 어쩌면 이건 다시는 못 올 기회가 아닐까 싶은게 언제 또 다이치에게 무언가를 바라고 그걸 선물로 받아보겠는가. 바위같은 그를 조종할 수 있는건 ‘생일’ 이라는 조건 뿐인 것을.
“음.. 10만엔?”
“스가.”
“네.”
장난스런 스가의 말에 다이치는 정색을 하고 받아쳤다. 정신을 차린 스가는 곧바로 정중히 대답을 하곤 다시 선물에 대해 곰곰히 생각했다. 평소 같고 싶었던 것, 좋아하는 것, 생일에만 받을 수 있는 것. 뭐가 좋을까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어떤것도 떠오르지 않았고 이에 스가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는 다이치에게 무안한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없네-.”
“없다고?”
“응. 없어. 미안해.”
웃으며 없다고 말하는 통에 무슨말을 내뱉어야할지 몰라 다이치는 한숨을 내쉬었다. 되도록이면 당사자가 좋아하는 선물을 사주려했는데, 이젠 머리 아프게 고민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것만은 피하길 바랐는데. 난감한 그의 표정에 스가는 괜시리 미안한 마음만이 늘었다. 끄응, 하고 살짝 앓은 소리를 내던 다이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럼 맘에 안들어도 거부는 하지마.”
그의 말에 스가는 살짝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가 무슨 이상한거라도 들고 오겠냐만은, 미리 저리 경고를 하다니, 진짜 별로인거 가지고 오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였다. 그때엔, 사실대로 말해야 할까-
“글쎄, 그때 상황 보고~”
모르겠네.
**
하루가 지나고, 다이치는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그 문제만을 되풀었다. 부활동에서 만나는 스가의 눈빛도 심상치 않아서 더 고민이 되었다. 두고두고 써먹을 수 있으면서 인상깊을 선물이 뭐가 있을까. 그렇게 고민끝에 생각난 선물은ㅡ
시간은 지나고 지나 드디어 스가의 생일 당일이 되었다. 스가는 학교에 오자마자 친구들에게 축하를 받았고, 그것도 모자라 배구부원들에게 격한 축하도 받았더랬다. 이러한 다른 사람의 축하도 있었지만 그의 모든 신경과 관심은 오로지 다이치의 선물이었다. 뭘 준비해온걸까. 올해는 뭔가 특별한 선물일까? 근데 진짜 별로면 어떡하지. 하는 선물에 대한 궁금함에 그를 빤히 바라보기도 몇번, 그의 주변을 메돌기도 몇번 그 행동들을 몇번이고 몇번이고 계속해서 되풀었다. 이 행동에 눈치를 채지 못한다면 다이치가 아니기에. 그는 스가가 자신의 선물을 기다린다는걸 알고있었고, 그저 선물을 줘야 할 그 ‘시간’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둘이 함꼐 있게 될, 둘만이 함께하게 될 그 시간을.
그렇게 모든 훈련이 끝나고, 역시나 날은 어느새 어둑해지고 해는 다 사라졌다. 다이치의 선물을 아직까지 스가에게 전달이 안 된 모양인지, 지금 스가는 살짝 짜증스런 얼굴로 다이치를 바라보다가 다시 짐을 꾸렸고 모든 짐을 챙기곤 다이치에게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이는 호기심에 지쳐 살짝 짜증이 나버려서 나온 행동으로, 쿵쾅대며 다가가자 ‘그’ 다이치도 살짝 움찔했다.
“뭐 잊으신거 없으신가요?”
스가의 엄청난 표정 때문인지, 다이치는 그게 또 웃겨서 푸흡, 소리를 내버렸다. 안그래도 짜증이 나 있던 스가에게 그 웃음은 그의 심기를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왜 웃ㅇ-”
“선물, 지금 줄게. 나랑 어디 좀 같이 가지 않을래?”
왜 웃냐며 딴죽을 걸려던 찰나에 들려온 다이치의 말은, 스가의 표정을 언제 짜증났냐는 듯 밝게. 아주 밝게 만들었다. 너무나 티없이 밝아서, 다이치로 하여금 더 큰 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그럴까?”
**
쌀쌀한 기온에 시야가 트인 언덕 위로 올라가니 더 쌀쌀했다. 동네가 훤히 보이니 스가는 미소를 머금으며 언덕 아래를 보았다. 그런 스가에 다이치는 미소를 지으며 그를 따라 언덕 아래를 보고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동안 서로는 생일이나, 선물 같은거를 잊어버리고 그저 풍경에 감탄하고 있었다. 다이치가 끌고 온 이 언덕은 생각보다 꽤 높은 곳이었고, 또 생각보다 매우매우 아름다웠다.
“여기 좋지않아?”
“응. 좋다. 여길 어떻게 알고있는거야, 너는?”
다이치는 뿌듯해하며 치아가 드러나도록 환한 미소를 지었다. 비밀, 이라고 작게 속삭인 그는 동네를 보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별이 유독 많은 듯한 날. 모든 별들이 어떤 말이든 속삭일 것 같은 그런 날. 별들이 뭘 얘기하는 것 같은데.
다이치는 인상을 구겼다. 뭘 잊은 것 같은데. 뭐지.
“아 맞다 선물”
“선물?”
아. 그랬지. 스가는 다시 선물에 대한 호기심이 어린 눈빛으로 다이치를 바라봤다. 이에 다이치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뒤적이며 찾았고, 한참을 뒤적거리다 살짝 멈칫하는 듯 보였다. 스가는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했고 다이치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왜 그러는걸까. 그는 이제서야 이걸 줘도 되나 고민을 하고 있었다. 약간의 용기를 내며 꺼낸 것은
“캡사이신?”
“하하..”
한번 보다가 건넨 캡사이신은 스가를 웃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니까. 멈추지 않는 웃음에 따라서 미소를 짓는 다이치는 한시름 놓았다는 느낌이었다.
“매운거 좋아하니까,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진짜 좋다. 고마워, 고마워”
캡사이신을 좀 더 보곤 가방에 넣은 스가는 아직도 그게 웃긴지 슬쩍슬쩍 웃음이 얼굴 밖으로 튀어나오곤 했다. 다이치도 조금씩 웃으며 다시 하늘을 보았는데, 별은 더 반짝이면서 더 환히 웃고 있었다. 더 반짝이는 그 둘을 시기하는듯이. 그 별들을 빤히 보던 다이치는 시선은 고정시킨 채로 나즈막이 말했다.
“생일 축하해. 스가와라”
어느새 별을 보던 스가는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려 다이치를 보았다. 어둠 사이로 보이는 살짝 빨개진 것 같은 귀가 꽤나 귀여웠나, 어여쁜, 맑은 표정을 짓고는 장난스런 목소리를 내었다.
“나는 좋아해, 다이치.”
스가의 말은 태연히 앉아있던 다이치를 놀라게했다. 다급히 고개를 돌려본 스가의 표정은 아까와 같이 웃고있는 표정. 다른 말 없이 그런 말만 내뱉고 그저 웃기만 하면 나는 뭐라 말을 해야할까. 진심일지 장난일지 다이치는 알 수 없었다. 애매함에서 시작된 이상한 침묵은 오고가는 시선을 통해 이어졌다.
“사실 장난이었-”
“나도 좋아해. 코우시.”
장난으로 정리하려던 그의 말은 다이치의 공격으로 모두모두 무산되었다. 확실히, 반쯤 진심이었던건 사실이었다. 근데 이렇게 훅 들어올 줄은 몰랐는데. 스가는 좀 더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까 다이치의 고민을, 스가가 하게 된 것이다. 그의 눈과 목소리는 장난이 아니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말이 되지 않는다. 다이치가, 나를?
“장난이지?”
“미안,”
다이치는 슬슬 눈치를 보며, 진지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진심이거든.”
다시 그 둘에게 찾아온 기나긴 침묵. 정적. 둘은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도 서로의 존재를 알 수 있을만큼 빨갛게 빛났다.
“거짓말이면 캡사이신 뿌리려 했는데. 아니여서 다행이다.”
“그, 그렇네.”
정말 다행인 밤이야.
다이치와 스가는 오래도록 같은 별을 보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