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스가] 바다 저 끝에서.
W. 새우
사와무라 다이치는 바다를 좋아했다. 매일같이 질리지도 않고 바닷가의 바위에 서 주말에는 해가 질때 까지 몇시간이고 바다를 바라봤다. 사와무라 부인은 그런 아들더러 바다가 지겹지 않느냐고 물어봤다가 다이치에게 몇시간이고 바다에 대한 즐거움을 들어야 했다. 사와무라 부인은 그런 아들의 안전이 걱정 되었지만 바다를 좋아하는 아들이고 몇번이고 주의사항을 말 해줬기에 100퍼센트 믿는건 아니지만 그나마 안심 할 수 있었다. 바다에 들어갈 경우 옷을 미리 챙겨 갈 것, 너무 깊이 들어가지 않도록 할 것. 그리고...
“ 항상 목걸이를 가지고 다닐 것! ”
사와무라가 가지고 다니는 목걸이의 팬던트 모양은 작은 유리병 안에 은색과 약간의 검은색이 섞인 신기한 모래가 들어 있었다. 사와무라가 살고있는, 그러니까 그의 고향인 이 지방 그 모래가 인어의 눈물로 만들어진 모래로 생각하며 팔고 있었다. 바다에 나가는 어부들과 뛰노는 아이들을 지켜준다는 미신이 있었지만 예로부터 계속해서 믿고있는 전설이었다. 사와무라는 바다에 놀러갈 때에나 밖에 나갈 때에도 항상 목걸이를 목에 걸고 다녔다. 어릴적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목걸이 이기에 소중히 목에 걸고 다녔다. 목에 걸지 않을 때에는 가방이나 필통 속에 꼭 넣고 다녔다. 또래 남자 아이들이 그런건 유치하지 않냐며 놀릴 때에도 반드시 손에 쥐고 있었다.
목걸이의 끈을 질끈 묶고 늘 가던 바닷가로 발을 돌렸다. 벌써부터 퍼져 나오는 바다의 향기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해류에 떠밀려온 해초들을 줏어 바닷물에 헹궈내어 봉투에 넣었다. 바위 섬 옆에 붙어있던 따개비와 거북손들도 몇개 뜯는다. 배부를 만한 양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끼니 거리가 되어줄 수 있을만한 양이었다.
‘ 아가, 내 아들. 바위 섬 위에는 올라가면 안 되는거, 알지? 엄마랑 약속 하렴. ’
바위 섬은 바닷가 한가운데에 큰 바위가 층층히 쌓여져 있는 인공적인 섬 처럼 보인 공간이었다. 성인들도 위험한 곳이라고 자주 이야기 거리에 올랐다. 그 곳에 올라가는건 둘째치고 높은 파도에 휩쓸리기라도 하면 크게 다치며, 사체도 찾지 못 하고 영영 사라진 사람도 있다 할 만큼 아이들 에게는 물론이요 어른들 에게 까지 위험하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사와무라 부인은 그런점이 약간 불안 했지만 워낙 듬직한 아들을 믿기로 했다. 실제로 혼자 바다에 갔다 온 근 몇년간 사고는 단 한번도 없었으니까. 그 신비한 목걸이가 효력을 발휘 하는걸수도 있으니까.
사와무라는 한 손에는 작은 그물망을, 한 손에는 여벌의 옷과 수경을 들고 바닷가로 향했다. 날씨가 괜찮으니 바다에 들어가도 된다는 어머니의 허가가 떨어진 덕분이다. 바닷물은 짜고 맛이 없었지만 바다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에 몇번이고 수영을 하고, 조개를 줍고, 친구들에게 지겹지 않냐는 소리를 들을 만큼 소년은 바다를 좋아했다.
하지만 소년은 단 한번도 바위 섬에 오르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그리 신신당부를 들어서인지 항상 별 탈 없이 잘 귀가 했다. 다친거야 뜨거운 모래 위에 넘어져 피부가 붉게 쓸린정도 였다. 그러나 사와무라는 바위섬이 정말로 궁금했다. 바위 섬 앞에 가져온 그물망과 여분의 옷을 내려 두었다. 그리고 천천히 바위 섬을 올라가기 시작 했다.
바위 섬은 그다지 가파르지 않았다. 파도에 의해 깎이고 깎여 오이려 맨들맨들 한 계단 처럼 잘 깎여 있었다. 정상에 올라가니 수평선 까지 탁 트인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위험한 장소라는 소문으로 유명한 곳이었지만 사와무라는 바위 섬에서 내려 갈 생각 없이 한참동안 바다를 바라보며 있었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혔다 쓸리는 소리가 고요히 퍼져 나아갔다. 흰 파도 거품이 예쁜 물결을 그리며 흩어지는 모양이 참으로 예뻤다. 파도 모양대로 흰 진주가 모였다 흩어졌다 하는 기분까지 들었을 정도였다.
“ 슬슬 내려가 볼까? ”
내려가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단지 한가지의 문제가 발생하기 전 까지는. 일전부터 사와무라 부인이 목걸이의 끈이 낡아서 끊어질까 불안해 했었는데, 사와무라는 자신의 어머니가 번거로워 할까봐 끈을 교체하는걸 미뤘다. 그 결과 바위섬을 내려가는 도중 끈이 끊어져 팬던트가 그대로 바다에 빠져버렸다.
바다에 빠진 팬던트는 금방 빠져서인지 아직 깊이 가라앉지 않았다. 푸른 바다색과 은빛 팬던트가 더욱 밝게 빛이났다. 사와무라는 바다 속이라는 것도 잊고 잠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바닷 속은 맑고 파랬지만 투명하기도 했다. 이것이 사와무라가 매번 겨울을 제외하고 빠짐없이 바다에 들어가는 이유였다. 그러나 점점 옭아매어 오는 숨통에 사와무라는 지금 자신이 어느 곳에 있는지, 무얼 하고 있는지 금세 깨닫고 가라앉던 팬던트를 손에 쥐어서 뭍을 향해 열심히 발길질을 했다.
사와무라는 수영을 못 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뛰어나게 잘 하지도 못 했다. 단지 파도에 휩쓸렸을 때 아슬하게 생존할 수 있을만한 실력이었다. 그런 수영 실력을 알기에 사와무라 부인도 그를 바다에 안심하고 내보낼 수 있었다. 바다에 나가기 시작 한 근 몇년간 바다에 빠져 크게 다치거나 고비를 넘긴 일은 없었다. 자외선 차단제를 잘 바르라는 사와무라 부인의 말을 확실히 지켜 뜨거운 태양에 살을 데여 벗겨지는 일도 없도 없었고, 모래사장에서 발을 데어 오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물이 자신을 거부하는 기분이 들었다. 평소에는 자신을 맞이 해 주던 느낌의 파도와 바닷물이 저더러 얼른 이 곳에서 나가라며 내쫒는 느낌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무언가가 다리에 걸려 영켜 붙었다. 막힌 숨에 한계가 오고, 인어의 모래가 담긴 팬던트를 쥔 손에 힘이 점점 빠지며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몸이 붕 뜬다는 기분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의식을 잃기 전 사와무라의 시야에 들어온건 은색의 밝은 빛이었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주변이 온통 흰색이었다. 한쪽 팔에는 굵은 주사바늘이 꽂혀 있었다. 날은 이미 어둑어둑 저물었고, 자신의 어머니는 병원 침대 옆에서 눈가가 붉어진 그대로의 모습으로 졸고 있었다.
" ... 엄마. "
" 다이치! "
자신의 작은 목소리에 흠칫 놀라서는 눈을 뜨며 품에 와락 안았다. 소중한 외동 아들이 죽을 고비를 넘기고 몇시간동안 의식을 잃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사와무라 부인의 말에 따르면 저녁 시간이 되도록 늦게 오지 않아 걱정되어 자신이 늘 가던 바닷가를 찾아 왔다는데, 잘 놀고 있어야 할 아들이 웬걸 모래사장에 물에 흠뻑 젖은 그대로 쓰러져 있다고 했다. 손에는 끊어진 목걸이 끈이 꽁꽁 묶여 인어의 모래가 담긴 팬던트가 손에 꽉 쥐어져 있다고 말 해 주었다. 그리고,
" 은색의 얼룩이요...? "
" 응, 목 뒷쪽에. "
손바닥의 반만한 면적 만큼 본디 없었던 생선 비늘 모양의 얼룩이 생겼다고 했다. 혹시라도 피부에 문제가 생긴건 아닐가 걱정하는 사와무라 부부와는 달리 다이치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의식을 잃기 전 보았던 은빛의 무언가. 그러나 이번 일 때문에 당분간 '바다 금지령'이 내려질 것만 같아 사와무라 부인이 무어라 하기도 전에 알아서 바다에 나가지 않았다. 그것을 이상히 여긴 사와무라 부인이 먼저 바다에 가지 않냐며 묻기 전 까지는.
몇날 며칠을 기다려도 그 이상한 은빛의 물고기는 나타나지 않은 그대로 개학을 맞이했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 개학하자 마자 은발의 소년이 전학왔다. 이름은 스가와라 코우시. 자신이 가지고 다니던 인어의 모래가 담긴 팬던트와 똑같은 색을 가진 머리카락이었다. 전학 온 곳은 타 지역으로, 약간 산골쪽의 시골이라고 했다. 좋아하는 음식은 마파두부. 매운것은 모두 잘 먹지만 매운 음식 중에서도 마파두부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그와 사와무라는 의외로 금방 친해졌다. 애초에 같은 또래였고, 대화도 잘 통했으며, 본디 사와무라가 친하게 지내던 아즈마네 아사히도 포함 해 셋이서 다니기 시작했다. 다이치가 좋아하는 라멘집에는 자주 갔으나 워낙 매운걸 잘 먹지 못 하는 둘 덕에 마파두부집에 가는건 매달 1회 정도.
" 그러고보니 스가와라의 집은 어디야? "
항상 스가와라가 대답을 회피하는 질문이기에 두 사람은 그 뒤로 같은 질문을 하지 않았다. 곤란한 사정을 캐묻는 성격도 아니었거니와 언젠가 말해주겠지 싶은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제각각 가정사정이라는게 있는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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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거, 언제부터 알았어? "
" 스가. "
" 내, 가, 다이치를 구해 주었다는 그 사실을. "
자신이 괴물 취급 당하지 않을까의 공포에 몸이 떨리고 입술이 푸르게 질렸다. '인어'는 이 마을의 전설인데, 그 전설 취급을 받는 본인이 자신의 곁에 있다는걸 안 다이치의 반응이 무서워 눈을 감았다.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에게 경멸하는 듯한 표정을 보여지는게 너무 무서웠다. 항상 곁에 있고 싶었는데.
" 피하지 말고 날 봐. "
" 내가 징그럽잖아. "
반은 인간이요, 반은 물고기인 생명체를 좋아 할 사람이 어디있나 싶었다. 그 생각을 하니 절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내렸다. 마음 한 구석이 쓰려왔다. 마음을 고백 하기도 전에 차이는 기분이 이런 느낌인걸까.
" 어째서. 왜 나를 싫어하지 않는거야? "
" 내 말 잘 들어. 너가 인어이기 전에, 우린 친구고, 그 전에는 나의 생명의 은인이었어. 그 날 이후로 항상 하고 싶었던 말이 두개나 있었는데 넌 나타나지 않았지. 이 팬던트, 네 머리카락의 색과 닮았어. 은색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 되어주었고. 그래서 난 너에게 이 말을 해 줄거야. 하나는 내 생명을 구해줘서 고맙다는 것, 하나는 너의 생일을 축하 한다는 것. 그리고 지금 생각난 또 하나의 말. "
" ... 그게, 뭔데? "
그건 말이야.
?
다시한번 여름이 찾아오고 사와무라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바다를 찾아 은빛의 인어와 이야기를 나눴다. 스가와라가 울었던 그 날, 사와무라가 해 준 그 말 덕분에 스가와라는 사와무라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연인들에게 매우 달콤한 한마디. 그리고 애정이 담긴 한마디.
널 좋아해.
두 사람의 연애를 축하 하기라도 하듯, 파도가 잔잔히 일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