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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스가] 사랑이란 꽃말의 꽃은

W. 화련

00


평범한 6월의 세상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살짝 후덥지근한 날씨와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 봄이라기엔 너무 멀고, 여름이기라 하기 에도 애매한 그 날씨. 나의 6월의 하루는 똑같이 잔잔하고 고요하며, 평소와 다름없었다.
그가, 내 앞에 나타나기 전 까지는.

01

어렸을 때부터 나는 잘생겼다는 말보다는 예쁘다는 말을 들으면서 자랐다. 그렇다고 엄청 예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어머니를 쏙 빼닮았다고 했다. 흰 피부에, 눈 밑점. 회색 머리. 다만, 눈 색만은 어머니를 닮지 않았다. 어머니는 조금 더 진한 흑색에 가까우셨다. 그래서 주변 어른들은 나를 보시고는 신기하다고 말하셨다. 그 도 그럴 것이, 나는 정말 아버지를 닮지 않았다. 누가 말하지 않았다면 절대 모르는 사실이 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원예사이셨고, 어머니는 작은 꽃집을 운영하셨다. 나는 두 분의 영향을 물려받아 어릴 적부터 꽃과 나무, 풀들과 벌과 나비와 가깝게 지냈다. 더군다나 외동아들인 나는, 부모님의 관심을 고대로 받게 되었다. 그렇다 해서 내 유년 시절이 싫었던 아니다. 좋은 점도 분명히 있었고, 부모님은 내 장래를 위해 지원을 아낌없이 해주셨다. 나는 사실 되고 싶은 것이 없었다. 그냥 나도 어머니의 가게를 물려받아 따사로운 햇살 아래서 사람들에게 예쁜 꽃들을 안겨주고 싶었다. 워낙 오랜 시간동안 꽃들과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나에게 아름답지만, 가끔은 가시를 품고 있는 장미라는 것을 알려주라는 말을 하셨고, 더불어 벌이 오든, 나비가 오든.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 아버지께서는 양지에 피는 꽃이 되던, 음지에 피는 꽃이 되건 그에 맞게 살아가며 본래의 나를 잊어버리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그 말을 평생 안고 살아왔다. 매년 생일 때 받던 꽃들을 보면서도 생각했던 말들이었다. 현재 스물의 중반의 나 역시 어린 시절의 그 이야기를 내 좌우명으로 삼고 살고 있다.

“찾는 꽃 있으세요?”

 

안녕하세요, 스물여섯, 작은 꽃집의 주인 스가와라 코우시입니다.

02

“야, 오이카와. 내일이 예선전 이라며.”
“으응, 그렇지.”“근데 너 답지 않게 왜 이렇게 죽었냐.”
“내일 이와쨩이 경기장에 없을 걸 생각하니까 힘이 안나는걸.”
“헛소리하네, 쿠소카와가.”
“그렇지만, 이와쨩이 내 곁에 없었던 적은 없었잖아. 이와쨩 없이 뛰는 경기는 처음 이라고.”
“너 잘 하잖아. 아는데 뭘. 경기장에 못가는 거지 중계는 보거든?”
“그러게 왜 예매 실패해서.”
“그래.......내가 미안하다. 중계 꼭 볼게.”
“꼭 봐! 나 경기 끝나고 전화할거야. 들어갈게. 이와쨩 잘 자.”
“그래.”

이와이즈미 하지메의 오랜 친구, 오이카와 토오루는 국가대표 배구 선수다. 이와이즈미는 그의 친구이자 전 동료. 대학교에서 오이카와는 정식 팀으로 스카웃 되었고, 내일이 국가대표로서 첫 공식경기다. 하지만 이와이즈미는 가지 못하지만. 이와이즈미가 표를 제때 구하지 못한 자신을 바보라고 생각하며 자책했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 바로 꽃이었다.

“어서 오세요, 곧 마감시간인데 아슬아슬하게 오셨네요. 찾는 꽃 있으세요?”
“그, 친구가 첫 경기를 뛰게 되었는데, 축하나 그런 의미의 꽃이 있을까요.”
“좋은 친구시네요. 노란 장미는 어떠세요? 꽃말이 완벽한 승리라는 뜻이 있고, 예전 병사들이 승리 뒤에 받았던 꽃이 노란 장미이거든요.”
“좋네요, 혹시 내일 배달이 될까요?”
“그럼요, 배달할 장소가 어디인지 알 수 있을까요?”
“도쿄 제 1체육관 있죠? 거기서 내일 국가대표 남자 배구 예선전이 있거든요. 저는 가지 못하니까. 뒷문 쪽으로 가셔서 제 이름 말하면 들여보내 주니까 오이카와 토오루라는 선수한테 전달해 주시면 돼요. 아, 경기 시작하는 시간은 오전 10시니까 한 30분 전 까지만 가시면 돼요.”
“네, 알겠습니다. 성함만 알려 주세요.”
“이와이즈미 하지메 입니다. 그럼 모쪼록 잘 부탁드릴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2만 5천원입니다. 배달 값은 좋은 일일테니까 받지 않도록 할게요.”
“하지만.......”
“괜찮아요, 저도 좋은 구경 할 텐데요.”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올게요.”
“살펴가세요.”

이와이즈미가 나가고 스가와라가 문을 잠갔다. 그러고는 가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빗자루를 들어 바닥을 쓸기 시작했다.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유리로 된 창문들이 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바라본 밤은 정말 깨끗했다. 많지는 않아도 보이는 별이며, 곱게 휘어진 초승달, 그리고 사람이 없는 한적한 가게 앞. 가로등 아래의 나방들. 평소처럼 마무리하는 하루에 스가와라가 작은 한숨을 포옥 하고 내쉬었다.

‘하루 정말 길었다.’

03

새벽 5시 반,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스가와라가 옷장 앞에서 멈추었다.


‘오늘 뭐 입지?’

잠깐 지나친 생각에 스가와라가 멍하니 옷장 문만을 바라보았다. 항상 꽃집 안에서는 흰 티셔츠에 검은 바지, 카디건밖에 입지 않았고, 밖을 잘 나가지도 않았으니 입을 옷이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스가와라가 급하게 옷장 문을 열고 옷의 상태를 보니 역시나, 꽃집 안에서 입는 후줄근해져버린 티와 비슷한 계열의 바지 몇 벌이 다였다.

‘다시 꽃집으로 갈 건데 대충 입어도 상관없지 않을까?’

모르겠다, 라고 중얼거린 스가와라가 그나마 가장 최근에 옷장에 들여놓은 연 블루의 셔츠와 검은 슬랙스를 집어들어 서둘러 갈아입은 후, 나갈 준비를 다 하고는 집을 나섰다.

“이런, 늦겠다.”

스가와라가 작은 승용차의 시동을 걸고 라디오를 켰다. 평소에는 차를 잘 타지 않는 편이라 심호흡을 하고는 천천히 액셀을 밟았다.

“도착! 역시 차타고 오는 게 빠르네!”

스가와라가 노란장미 몇 송이를 꺼내 가시와 이파리 몇 개를 제거한 후, 밑 부분을 다듬었다. 이내, 정성스레 하얀 종이와 투명색 포장지로 꽃들을 감싸 끈으로 묶어 완성 한 후 물을 뿌려 노란 장미꽃 한 다발을 금세 만들었다. 꽃다발을 안고 다시 차로 돌아온 스가와라가 장미 다발을 보조석에 놓고 운전을 시작했다.

약 두 시간을 달려온 도쿄 체육관 앞에는 아직 경기 시간이 아님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관계자들이 드나드는 뒷문으로 가니 사람이 눈에 띄게 줄었다. 스가와라가 뒷문 앞에 서있는 관계자를 붙잡고 말했다.

“저기, 이와이즈미 하지메씨 부탁으로 여기 온 사람입니다. 오이카와 토오루 선수 만나 뵐 수 있을까요?”
“잠시만요.”

잠깐 기다리라는 말에 스가와라가 꽃다발을 들은 채로 벽에 기대 발장난을 쳤다. 그리고 그의 발장난을 멈추게 한 한마디.

“들어가셔도 됩니다.”

04

‘이 문으로 들어가시면 바로 오른쪽 길로 꺾으시면 됩니다. 그러시면 남자배구 A팀이라고 적혀져 있는 문이 있어요. 그 안에 오이카와 선수 계십니다.’

체육관 안은 생각보다 컸다. 바로라 해도 그 길이가 꽤 되었고, A팀의 담당 문 앞에 섰을때는 왠지 심장이 쿵쾅 쿵쾅거리면서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듯 했다. 똑똑, 오이카와 토오루씨 계시나요?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다시 한 번 문을 두드리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밤갈색의 머리의 소유자가 내 앞에 섰다. 이 사람이 오이카와 토오루인가?

“저기, 혹시 오이카와 토오루 선수.......”
“그거 저 맞는데요, 무슨 일로?”
“이거 친구 분, 이와이즈미 하지메씨께서 그 쪽한테 전달 부탁 드려서요. 그래서 왔어요.”
“이와쨩과는 무슨 사이이신데......”“아! 저는 그냥 꽃집 주인이에요! 제가 직접 꽃도 고르고 포장까지 했는데 꽤 아름답지 않나요. 노란 장미의 꽃말이 완벽한 승리이거든요.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네요.”
“아.......정말 예뻐요. 감사합니다. 오늘 이와쨩이 안온 것은 조금 슬프지만 그래도, 꽃이랑 당신이 와서 참 좋네요.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저야말로 감사드립니다. 경기 꼭 힘내세요!”
“그, 혹시. 꽃집이 어디인지 알 수 있을까요? 꼭 한번, 다시 들리고 싶어 서요.”
“아오바 죠사이. 세이죠 고등학교 앞 꽃집이에요.”
“거기서 고등학교 나왔는데, 운명인가요? 경기 끝나고 언제 한 번 들려보도록 할게요.”
“네, 그럼 그때 다시 뵈도록 할게요.”

살짝 고개를 숙이고 뒤를 돌아 밖으로 향했다. 뭐야, 배구 선수라면서. 잘 생겼어. 아니, 뭐지 이 감정은. 어, 어, 어. 쉽사리 단정 짓지 못한다. 왜 가슴이 뛰는 거지? 빠르게 하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두 손안에 얼굴을 파묻었다. 더 가다가는 얼굴이 터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이카와 선수, 오늘 컨디션이 매우 좋아 보입니다. 매치 포인트를 두 점 남겨두고 오이카와 선수의 서브. 네, 서비스 에이스 득점입니다!’
‘다시 한 번 서브. 아, 아쉽습니다. 2번 선수가 받아 냈습니다. 하지만 찬스 볼. 토스, 올려 졌습니다. 과연, 네! 득점입니다. 개인 시간차. 멋진 공격입니다. 오이카와 선수도 깔끔하게 토스 올렸네요. 이렇게 매치 포인트입니다.’

“와, 역시 국가대표네. 무섭다 정말.”

‘2대 0으로 완벽한 승리를 거머쥔 A팀, 본선 진출 확정입니다.’

“음, 역시 노란 장미.”

05

온다던 그 오이카와 토오루는 경기가 끝나고 사흘이 지났지만 오지 않았다. 바빠서인가? 아니, 그냥 예의상 말한 거겠지.......괜히 울적해지는 마음에 카운터에 고개를 처박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머리 위로 누군가의 손이 올려졌다.

“다이치, 이런 장난은 그만. 어, 그 어?”
“너무 늦게 와서 잊어버리신 건가요?”
“기억, 당연히 하죠. 오이카와 토오루씨. 늦었지만 본선 진출 축하드려요. 중계 들었어요. 멋지던데요.”
“그럼요, 제가 누군데.”
“솔직히 말하자면 기다렸어요. 언제 오나 하고.”
“그랬나요. 오이카와씨가 잘못했네요, 그렇죠?”
“네, 잘못하셨네요.”
“엑, 엄청 상쾌하신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네요.”
“........그런가요.”
“그나저나, 사랑이란 꽃말의 꽃은 뭔가요?”
“붉은 장미요. 제일 많이 나가는 꽃 중 하나죠.”
“그러면요, 본선 경기 때 그 붉은 장미 들고 경가 보러 와주실 수 있어요?”
“왜요?”
“그때 말할려고요.”
“무엇을요.”
“제가 사장님에게 관심있다는 걸요.”
“그래요? 근데 저는 그때까지 못 기다리는데.”
“그럼 지금 말할까요?”
“해봐요.”
“좋아해요, 제가요.”“.......뭐, 저도요. 사실 그때 보고 반했는걸요.”
“이런, 제가 너무 잘생겨서. 그래도 그 때 다시 말할래요. 지루해도 기다려 주세요.”
“기다리죠.”
“여기 자주와도 되죠?”
“손님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엑, 그러면 올때마다 한 송이씩 사가죠.”
“좋아요.”

사랑이란 꽃말의 꽃은, 붉은 장미이다. 제일 많이 나가는 꽃. 아마도, 수많은 연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꽃. 물론 나도 좋아한다. 나도 사랑을 하니까.

“근데 우리 진도 너무 빠른거 아니에요? 제가 나쁜 사람이면 어떻게 하실려고.”
“아닌거 아니까 괜찮아요.”

아,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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